뉴질랜드는 여성 파워가 강한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공직 분야의 여성 파워는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최근에는 30대 여성 총리가 탄생하면서 또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 주무르는 정치권력의 노른자위를 젊은 여성이 거머쥐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여성 총리로는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다. 뉴질랜드 역대 총리를 성별로 나누면 남자들이 훨씬 많지만 여성 총리들이 세 명이나 나왔다면 대단한 거다. 물론 한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은 나왔다. 하지만 아버지 향수에 기대어 권력을 잡은 것과 자신의 능력으로 정권을 잡은 건 차이가 있다.

뉴질랜드는 총리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현재 국회의원 120명 가운데 46명이 여성이다. 비율로 보면 38.3%다. 여성의원 비율이 50% 선을 넘어선 남미 볼리비아나 아프리카 르완다보단 낮지만 17% 선에 머무르는 한국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다.

뉴질랜드의 여성 파워는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이 참정권, 다시 말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게 된 나라가 뉴질랜드다. 그게 한 세기도 훨씬 지난 1893년 일이다. 민주주의 본산인 영국과 미국에선 각각 1918년과 1920년에 여성 참정권이 주어졌으니까 여성 파워 면에서만 본다면 뉴질랜드가 한발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뉴질랜드는 영연방 국가로서 영국 여왕을 대신하는 총독도 여성이고 대법원장도 여성이다. 국회의장은 60대 남성이지만 바로 30대 여성 총리가 지명한 사람이다. 한때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권력 3부를 여성들이 싹쓸이한 적도 있으니까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여성 파워가 커지면서 뉴질랜드 사회도 점점 여성들을 배려하는 분위기다. 최근 국회 본회의장에 여성의원들이 젖먹이 아기를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뉴질랜드 국회 본회의장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의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일과 가족의 가치가 모두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작지만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성들이 계속 목소리를 높여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선 여성들의 승리라고 칭찬해줄 만 하다.

현재 뉴질랜드는 대학 진학률도 여자들이 훨씬 더 높다. 남자들보다 오히려 공부를 더 많이 해 여성들의 고급인력 비중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성들의 노동력 참가율도 65%로 한국보다 15% 정도 높다. 아기를 낳고 가정을 돌보면서도 사회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억척스러움이 엿보인다. 애기구덕을 옆에 끼고 물질과 밭농사에 매달렸던 옛날 제주 여성들이 연상될 정도다.

뉴질랜드 여성들이 남자들 앞에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제주 여성들과 비슷하다. 애교 같은 건 부릴 줄도 모르고 남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세다. 힘든 일은 남자들에게 떠넘기면서 대접은 똑같이 받겠다는 염치없는 짓은 하지도 않는다. 남녀평등의 의미를 명실상부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벽은 높다. 뉴질랜드에도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여전하고 기업의 고위직 비율도 남자들이 훨씬 높다. 성별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유리천장은 엄연히 존재한다. 진정한 평등사회가 앞당겨지기 위해서는 여성 파워 못지않게 남자들의 의식변화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