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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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중)

벌레 먹은 찌그러진 과일을 노인이 팔고 있다. 과일은 성하지 않다. 군데군데 썩었다. 지폐 한 장 든, 등 굽은 노파가 시골 장터 위아래를 수차례 오르내린다. 수중에 가진 게 없어 좋은 과일을 살 수 없었다. 노파의 삼대독자 아들이 병이 났다. 미음도 먹지 못한 채 시시각각 죽어 가고 있다. 그 아들, 평생 과일 구경을 한 적이 없다. 해 설핏할 무렵, 노파가 ‘벌레가 먹다 남은 노인의 찌그러진 과일’을 사갖고 간다. 과일을 입에 넣은 아들, 웃음기를 머금고 마지막 숨을 넘긴다.

함석헌, 그는 시골 장터의 문드러지고 벌레 먹은 과일 같은 게 자신의 시라고 했다. 삶의 현실 같은 밭고랑에서 문득 눈물 사이로 새어나오는 생각, 그것들이 시가 됐다고 썼다.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을 했고, 자유당 정권부터 시작해 5·16을 정면에서 공격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끊임없이 나라 독립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비폭력·평화사상을 바탕으로 사회개혁에 매진하며 거센 시대의 파동을 뜨겁게 끌어안은 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사상계」의 주필로서, 「씨알의 소리」 발행인으로서, 사회비평적인 글로 시종 민중계몽운동을 선도하던 사상가.

“우리는 희망을 가집시다. 칼로 찍을 수 없고 불로도 태울 수 없고 물로도 빠져 버릴 수 없는 것이 우리입니다. 스스로를 믿으십시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진리와 자유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 믿음·생각·삶이 일치된 인물, 생각 곧 그에게 실천이었다. 그의 ‘씨알 사상’은 씨알이 민(民)이니, 씨앗과 알, 시작과 끝의 의미였다. 그런 그의 사상의 실천 거점이 된 잡지 「씨알의 소리」는 강연과 더불어 ‘씨’들이 신명나던 한 판 축제의 장이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세상 모든 이가 찬성한다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일 때, ‘아니’ 라고 조용히 머리를 내흔드는 한 사람이 있다. 그 한 사람을 생각하며 세상의 알뜰한 유혹을 뿌리친다.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마음이 외롭다. 그때, ‘저 맘이야’ 하고 믿게 되는 사람이 있다. 함석헌은 마흔다섯이 될 때까지 시 한 줄 써 보지 못했다가 시인이 된 연유를 어머니 때문이라고 했다. 영어(囹圄)의 몸이 돼 감방에서 어머니를 떠올린 것들이 애틋한 시로 태어난 것.

일곱 살 되던 어느 가을날, 조금 못난 손아래 누이동생을 구박한 적이 있었다 한다. 그때, 어머니는 낮고 부드러운,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얘, 그건 사람이 아니냐?”라고 함석헌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그의 ‘씨알사상’의 밑바탕에는 어머니의 그 질문이 두껍게 깔려 있다고 고백했다.

소소한 물음 이전, 함석헌을 애절하게 했던 ‘그 어머니의 질문’을 떠올릴 것을 나는 자신에게 주문한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라든가, ‘고향이 어딘가’, 종교 따위를 묻지 않는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언어폭력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 닿아서다. 상대가 그런 질문에 답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데다, 또 그런 질문 자체가 허황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다.

함부로 하는 질문은 폭력이다. 순수하지도 않다. 그런 질문이 상대방을 물리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기제로 쓰일 우려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자기 취향과 기호에 따라선 그게 고문일지도 모른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시대의 고단함과 고통을 이겨낸다며, 늘 나무와 꽃을 가꾸던 큰 사상가의 그 깊고 너른 그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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