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언어로서 제주 사투리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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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C&C 국토개발행정연구소 소장/논설위원

현재 이 지구상에서 많이 쓰이고 전파력이 있는 언어는 대충 20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절반은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해외 식민지 개척을 통해 널리 퍼졌던 영어, 스페인어 등과 같은 유럽의 언어들과는 달리 한글을 비롯한 동아시아 언어는 애초에 인구밀도가 조밀하고 쌀을 재배하는 지역에서 유기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들 언어의 파급력은 지역의 영토 확대 추세 및 인구 증가 추세와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중국어는 중국에서만 쓰인다. 이처럼 대체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사용하고 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지역별로 지방 사투리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현재 영어는 세계 각지에서 쓰이고 있다. 미국 등이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주고 있지만, 이들 나라의 경제적 입지가 서서히 위축되면서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영어는 중국어, 일본어, 한글 등을 대체하기는커녕 약화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동아시아 국가의 언어에 끼친 영향도 상대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영어가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은 홍콩과 싱가포르뿐이다. 물론 현재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임에는 틀림없으나, 미래에 그 입지가 난공불락인 것은 아니다.

언어의 전파력은 언어 사용자들의 능력과 영향력에 달려 있다. 현재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중국어가 동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언어에 관한 한, 이 시점에서 동아시아를 일방적인 서구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지역에서 영어를 제외하면 여타 주요 언어들은 그 위상이 크게 실추되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주요 언어들은 자국 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필자는 특수학교 교사가 특수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살려 전국에 제주 사투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만든 소위 ‘사랑스런 제주어’ 밴드의 회원으로서 제주 사투리를 사랑한다. 현재 파급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크게 주목하지 않는 언어이지만 시공을 초월한 상황에서 새롭게 다듬고 말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언어학자 니콜라스 오슬러는 저서 ‘세계 언어의 역사’에서 “집단이 공유하는 언어는 집단의 역사를 기록하는 매개체다. 언어가 있기에 집단의 구성원들은 역사를 공유하고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살아있는 언어는 과거의 전통을 구현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제주 사투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되짚는 기준점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동안 제주 조상들은 제주라는 유배지에서, 천박한 땅과 바다를 밑천 삼아서 제주의 역사를 기록해왔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제주어로 말해왔다. 그런데 이런 과거의 전통은 서구화라는 허상을 등에 업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되고 있다. 외국어가 통용되어야 한다고 한다. 제주 사투리의 중요성은 크게 각광받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사라질 위기를 재촉하고 있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문화를 구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문화를 잃은 것과 같다. 제주어가 제주다운 문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보존하고 전파하는데 민관, 특히 제주 학계가 주도해야 함에도 그런 경향은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제주인들 또한 누구도 문화 창달이라는 차원에서 큰 관심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있다. 어떻든 금세기에도 서서히 수천 개의 언어들이 사라질 것이다. 제주 사투리 수명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별똥별이 스쳐 지나가듯 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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