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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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 초빙교수/논설위원

두 팔이 침대에 묶인 채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는 어머니를 중환자실에 두고서 돌아서던 밤, 버스의 유리창에서 울고 있는 여자가 서러워서 같이 울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안톤 슈낙의 애수어린 글이 무색하도록 울부짖는 어머니, 그 손을 하룻밤 동안도 잡아줄 수 없는 딸의 마음은 애수를 넘어서 비통에 이른다.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은 하루 종일을 기다려서 20분이다. ‘가난한 노파의 눈물, 가을밭에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털 들이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는 안톤 슈낙에게 문득, ‘죽어가는 환자를 싣고서 산 너머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추가해 달라고 호소하고픈 심정이다.

어머니가 넘어진 건 지난달 23일의 일이다. 서귀포의 큰 병원은 X레이를 찍어본 후 ‘대퇴부 골절이니 제주시로 가라’고 진단했다. 어쩔 수 없는 표정의 의사 앞에서 어머니는, ‘제발 여기서 고쳐줍서’라며 통사정을 하였다. 세상에, 서귀포에선 다리 부러진 것도 어떻게 할 수 없단 말인가? 아프다고 신음하는 어머니를 부여안고 제주시로 달려가는 길,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를 달래노라니 ‘어머니 눈 뜹서’를 외쳐대던 1년 전 일이 떠오른다.

그때도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어머니를 부둥켜안고서 ‘제발 살려 달라’는 내게, 무력한 표정의 의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랬다. 감기로 고열이 나서 입원한 어머니가 며칠 사이에 사경을 헤매게 된 상황이었다. 어머니 손을 부여잡고 임종기도를 드리는 순간, 눈물이 후두두둑 어머니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송별인사가 끝났는데도 어머니의 심장은 여전히 펄떡거렸다. 마치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형국이 아닌가. 바로 그때 마지막 확인 차 들어온 담당 의사에게 물었다. “이럴 때, 선생님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1% 가능성을 붙들고 제주시 종합병원으로 가봐야지요.”

그렇게 해서 한라산을 넘어간 어머니는 열흘 만에 서귀포로 돌아오셨다. 행운이었다. 하지만 ‘제주시로 갔으면 살았을 텐데….’ 하는 불운한 소문이 여전히 회자되는 곳, 서귀포에 사는 사람들에게 병원의 문제는 공공연히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5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에 의하면 보건의료지도(Health Map) 상의 의료상황이 제주시는 푸른색, 서귀포는 붉은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서귀포는 의료이용의 접근성, 양질의 의료이용 보장성, 건강 수준 및 결과 등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단 의미다. 특히 내과, 외과, 응급실 등 의료의 질적 수준이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서 서귀포는 더 심각한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1994년에 종합병원으로 승격한 서귀포의료원은 20년이 넘도록 위급한 생명을 다룰 수 있는 종합적 기능을 갖추지 않고 있다. 건강검진조차도 제주시로 나가는 사람들은 시설이나 기계보다 인력과 해석을 염려한다. 그럼에도 경영수익에 쫓겨서일까? 수차례나 확장되어 부쩍 활성화된 장례식장은 시민들의 슬픔을 빨아대느라 바쁘다.

오죽하면 서귀포에 헬스케어타운이 들어서고 보건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를 승인할 당시, 일부 시민들은 서귀포의 의료수준도 국제화되는 줄로 알았을까. ‘자본과 규모가 안정적이고, 응급사고 발생에 따른 대책과 국내 보건의료법령 준수 계획이 충실하다’는 평가에, 설마 죽어가는 환자를 문전박대야 하겠나 싶었으리라. 하지만 2만8163㎡의 수려한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세워진 병원은 피부관리, 미용성형, 건강검진을 주로 한단다.

‘서귀포에 살려면 목숨을 담보하거나 중병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탄식이 언제까지 계속될 건가. 그저 제주시 종합병원을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 다만 그 아픔을 나누기해 볼 뿐이다. 아, 서귀포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떠나지 못하는 게 과연 유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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