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
  • 제주신보
  • 승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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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즐겨 다니는 길목에 개복숭아 나무 한 그루 있었다. 나무가 어려 별 시선을 끌지 못하던 것도 잠시, 어느 봄날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하며 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4월 꽃샘추위를 물리며 흐드러지게 핀 분홍꽃은, 삭막했던 계절을 딛고 피우는 희망이었다. 꽃 시절이 짧아 하루가 아쉬웠다. 애틋했던 꽃이 속절없이 지고 열매가 조롱조롱 매달렸다. 봄 가뭄으로 징그러운 진딧물에 시달리며 열매를 지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장하다, 잘 키우렴. 자식 키우기가 그리 쉽지 않단다.’ 속으로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해를 거듭할수록 허우대 근사해지면서 장년의 티를 내더니 둥치도 굵어졌다. 개복숭아답지 않게 열매가 크고 튼실해, 하루 다르게 알이 굵어 가는 게 볼수록 대견했다. 저 스스로 작은 열매는 떨어뜨리고 굵은 열매만 키우는 지혜는 놀라웠다.

초여름 햇빛에 발갛게 얼굴을 붉히며 맛 들어갈 즈음이면, 입에 가득 침이 고였다. 잘 익으면 이번엔 한 알 꼭 따먹어야지 별렀다. 새콤한 향을 맡으며 딸까 말까 갈등과 한판 씨름을 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라는, 그냥 바라보는 것만도 좋다고 애써 아쉬움을 접었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한 번 맛도 보지 못한 채, 어느 날 밤새 누군가의 손을 타 나를 허망하게 만들었다.

모처럼 나섰던 길, 멍하니 서 있다 발길을 돌렸다. 며칠 전까지 이파리를 비운 채 겨울 채비를 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시멘트로 포장을 해 길을 내었지 않은가. 앞으로 예쁜 복사꽃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 귀중한 길 위의 친구를 또 잃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많은 나무가 뽑혀 나갔거나 베어졌다. 고목의 벚나무와 멀구슬나무, 후박나무며 찔레 덤불까지. 길을 넓힌다거나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설 때마다 가차 없이 잘려나갔다.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 주면 잘 자랄 귀한 나무들인데 섭섭하고 아까웠다. 지금까지 나름 숱한 인고의 시간으로 존재감을 키웠던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흔적조차 없다.

그뿐이랴. 계절 따라 길가에 피는 야생화도 개체 수가 현저히 줄었다. 봄이 오면 다문다문 피던 보라색 제비꽃이 혹 발길에 밟힐까 조심스러웠고, 노란 민들레가 풀풀 씨를 날리던 풍경, 절벽 틈에서 발라당 꽃잎을 말아 올리고 하르르 꽃술을 떨던 아리따운 참나리의 자태는 나를 홀렸다.

가을이 오면 갓 피기 시작하는 억새와 함께 언덕을 노랗게 밝히던 산국은, 단연 가을 정취의 으뜸이었다. 한창 만개할 무렵 차를 담근다고 무참히 꽃을 따가던 손길, 사람들의 이기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느 때는 번식력이 그악스러운 잡초도 귀하게 보일 때가 있다. 한여름 뜨거운 열기를 덮어 대지를 식히고, 들녘의 푸른빛은 풍요를 꿈꾸게 한다. 이름도 모를, 흔해 관심을 받지 못하나 그들이 없다면 참으로 삭막한 땅이 될 게다. 또한, 숱한 생명의 품으로 메뚜기, 여치며 방아깨비와 나비, 곤충들을 키워내는 곳이다.

일손이 부족하다 해도 무분별한 농약 사용은 자제할 수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곤 한다. 어쩌면 인간이 자연에 끼치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 아닐까. 풀이 죽어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땅은 내 생채기처럼 아프다. 하잘것없는 잡초라도 함께 공존해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도 있다.

이 가을, 주위에서 소중한 것들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지. 혹 우리가 지켜 간직해야 할 것들이 없는가, 마음 기울여 살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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