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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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태평양에 인공 섬을 만들어 정치인이 없는 국가를 만드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공상 같은 얘기지만 계획대로라면 오는 2020년까지 300여 명이 살 수 있는 그 첫 번째 해상 도시가 탄생할 전망이다.

이런 구상을 추진하는 건 ‘씨스테딩 인스티튜트’라는 미국의 비영리기관이다. 지난 2008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달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는지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상승이 자주 언론에 보도되면서 해상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기존의 세계 정치질서가 포퓰리즘으로 흔들리는 것도 한 원인이었다. 태평양의 프랑스 자치령 폴리네시아 정부는 씨스테딩 인스티튜트에 타이티 섬 인근 바다에 해상 도시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해양경제구역 건설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씨스테딩 인스티튜트의 구상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그래서 해상 도시 건설작업이 곧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바다에 만들어진 인공 섬에 주택과 사무실, 식당, 의료시설 등을 갖춘 현대적인 도시가 탄생할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몇 년 뒤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된다. 이런 해상 도시들이 계속 늘어나면 2050년쯤에는 궁극적으로 자립형 자치 해상 도시국가가 만들어진다는 게 계획 입안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도시국가가 추구하는 목표다. 여러 가지 목표가 있지만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정치인들로부터 인간성을 해방시킨다는 대목이다. 구상의 시발점이 현존하는 정부에 대한 환멸이라는 주장도 있고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결국 정치와 정치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해양 도시국가 건설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이런 구상이 실현될 수 있는 건 많은 사람이 수긍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정치인들의 행태가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요즘도 한국은 적폐청산으로 시끄럽다.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보복이라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계속 건드리면 반격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소리도 들린다. 적폐청산 그 자체보다 이를 둘러싼 싸움이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일이 반복된다. 그런데도 잘못된 관행과 불법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떳떳지 못한 돈을 받는 일은 근절되지 않고 있고 법치의 틀은 그것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에 의해 자주 유린된다. 국가정보원이 특수 활동비를 청와대에 뇌물로 상납하고 검찰이 법무부에 돈을 갖다 바쳤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제도가 바로 서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국민들이 화를 내고 분통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런 상황을 자주 목격하다 보면 너나없이 무력해지고 냉소적이 된다. 방관자가 돼서 입을 다물거나 그런 사회에서 벗어나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망망대해에 정치인이 없는 도시국가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일단 기발하다. 현대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쉽게 이루어질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매우 정치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는 말이다. 정치가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유전자의 정치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바람직하고 현실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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