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자리
노인의 자리
  • 제주신보
  • 승인 20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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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부탄의 한 사원 벽에 동물 네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잘 익은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아래 서 있는 흰 코끼리와 그 등 위에 앉아있는 원숭이, 원숭이 등 위에 앉은 흰 토끼, 그리고 토끼의 등에 새가 한 마리 앉아있는 그림이었다.

네 동물이 누가 제일 연장자인가 가렸던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했다. 코끼리가 숲에 처음 왔을 때 과일나무는 그의 키 정도로 자라있었다고 말하자, 원숭이도 자기가 처음 왔을 때 나무가 그의 키 정도 높이였다고 한다. 이에 토끼는 처음 숲에 왔을 때 나무가 너무 어려서 물을 주며 키웠다고 하고, 새는 자신이 그 나무의 씨앗을 물어다 심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눈 후 가장 나이가 적은 코끼리가 땅바닥에 서고, 그 위에 나이순으로 원숭이와 토끼, 새가 차례로 각자의 등 위에 앉게 되었다. 세상 살아온 세월도 다르고, 그에 따른 경험도 모두 다른 존재들이 서로 존중하며 조화를 이룬 양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약하다고 업신여김을 받기 쉬운 연장자가 사실은 고난의 시간을 먼저 겪으며 공동체 삶의 기초를 닦은 존재임을 일깨우는 그림 같기도 했다. 나이 들수록 점점 작고 가벼운 동물로 바뀌다가 마지막 모습이 새로 그려진 것도 흥미로웠다.

새는 한곳에 오래 있지 않고 언제든 날아갈 태세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특출한 능력이 있다. 노년은 후손들이 살 터전을 마련한 후 머물던 삶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도약하여 천상을 향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다.

현실에서 노인의 존재는 어떤가. 열매가 익는 풍요로운 숲이 되기까지 수고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마모된 외모와 쇠퇴한 능력만 남는다. 노인들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을 읽기는 어렵다. 세월은 새겨놓은 주름 속에 그들의 염원과 고뇌, 축적된 애정을 숨기고, 노인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또 다른 눈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체로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잊고, 노인이 되려면 영원한 시간이 지나야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산다. 사실은 누구나 다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해야 맞다.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은 이윽고 끝이 나며, 열매가 익어 생명의 나무에서 떨어지려는 찰나에 매달려 있는 노년은 태어난 사람 모두에게 올 현실이다.

얼마 전에 70세 신체지표가 15년 전 65세와 비슷하기 때문에, 노인의 연령을 70세로 보면 연간 2조5000억 비용이 절감된다는 기사가 있었다. 또한 검사 결과 요즘 사람의 뇌 용량은 70세까지 유지되고, 인지 능력도 떨어지지 않으므로 70세를 노인의 기준으로 삼아서, 현재 65세에 맞춰 도입된 복지제도를 변경해도 무방하리라는 견해도 나왔다.

그러나 가난한 노인들을 돌보는 복지사들은 이런 제안에 반대한다. 지금 제도에서도 충분히 처참한 노인들인데, 5년이나 혜택을 늦추면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정부는 현재 세계 1등인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오히려 더 노력해야 하며, 현재의 노인복지정책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한 것이다. 지출을 줄이려고 노인연령을 70세로 조정하면 기초연금 급여나 노인일자리 참여 박탈 등으로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인 빈곤과 낮은 출산율은 사실 같은 맥락으로, 약자가 살 수 없는 경쟁 사회, 힘이 없으면 퇴장을 강요하는 세상을 입증하는 것이다. 비용 절감 항목으로는 국민에게 돌아오는 연금이나 복지비용만 거론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나랏돈에 수없이 뚫어놓은 커다란 구멍들을 메꾸기 위한 궁여지책인 듯 여겨진다.

죽어버린 세상이 아니라면 노인이 없을 수 없다. 노인을 위한 정책은 우리의 미래를 좀 더 신중하고 창의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는 모두 지상에 삶이라는 공동유산을 받았으므로, 지혜롭고 공정하게 기본권을 근본으로 해서 정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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