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도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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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정치는 생물이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양(陽)이 음(陰)을 물리치기도 하고, 음이 양을 덮기도 한다. 국내 정치사에서 이 같은 정의를 제대로 보여준 거목을 꼽으라면 대개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든다. DJ를 알기 위해 ‘새벽 김대중 평전’(김택근 저)을 들췄다.

그는 섬 소년이었다. 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어머니의 집이 있는 간척지 이름이 후광리였고, 이후 후광(後廣)은 그의 아호가 됐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에 붙잡혀 즉결 처형을 당할 뻔했고, 첫 부인은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병으로 세상을 떴다.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던 박정희는 신인 정치인 DJ에게 여러 차례 손을 내밀었으나, 그는 거부했다. 이 대가로 멀고 험한 길을 돌아가야 했다.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건강한 다리를 잃었고, 납치돼 수장될 뻔했으며, 사형선고를 받아 교수대에 오를 날만 기다리기도 했다. 1987년 대선의 선거판을 읽지 못한 것은 실수였다. 200만 명 인파가 모인 보라매공원 유세 등에 흥분한 그는 자신이 반드시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 DJ는 훗날 “하느님의 뜻을 잘못 판단했다”며 자책했다.

▲거산(巨山)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도 정치는 생물이다.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을 때 “구상유취(口尙乳臭), 아직 입에서 젖비린내나는 것들이 무슨 대통령인가”라는 원색적 비난을 들었다.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는 IMF 외환위기를 불러온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결기에 찬 민주투사의 이미지는 퇴색되고,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등은 모두에게 가물가물해졌다. 보수, 진보는 가까이 다가가기를 꺼렸다.

정치 무상이라. 정치권이 다시 그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최근 열린 추모 2주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권은 대통령이 직접 추모식에 참석하였다. 그간 진보진영은 보수 정당과 손잡은 1990년 3당 합당 때문에 그를 ‘민주화 족보’에서 배제해왔다. 야권은 YS 지키기에 나섰다. 불과 몇 년 전 상황과는 격세지감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향후 정치 지형 재편과 관련된 YS 유산 싸움이 시작됐다는 말들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편치 못하다. 탄생 100주년을 맞았지만 기념우표 발행은 취소되고, 새마을운동도 부정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탄핵을 받지 않았다면 탄생 기념식은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을 것이다. 물론 재평가 열풍도 불었을 테다. 후대의 처신에 따라 선대의 평가도 달라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를 보면 역사도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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