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깊은 속살에 켜켜이 쌓인 이 아픔은 언제 나아질까
섬 깊은 속살에 켜켜이 쌓인 이 아픔은 언제 나아질까
  • 제주신보
  • 승인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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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알뜨르비행장
▲ 김해곤 作 직시(直視)하다

뒤척이는 바다가 허연 소금기를 털어내는 마을
모슬포에는 모래바람이 분다
바다로 가는 사람들의 고개가 꼿꼿이 들려 있다
산탄散彈으로 박히는 모래알갱이
눈으로 스며든 모래바람마저 그들에겐
버거운 삶을 지탱하는 추錐가 된다

 

먹장구름이 주거의 길을 가릴 때
저 산,
허리에 암굴 파내어 격납고 들어앉힌 상처
피멍든 곡괭이 소리에 혈을 빼앗기던
그날의 두려움이 아직도 아프다
그 아픔 전하고자 산은,
깎아지른 벼랑에 괭이갈매기 키워
어제는 하늘의 처마 밑에 물새알 몇 개 품고
구멍 숭숭 뚫린 산자락을 찾아온 깃털들로
적층을 이루게 한다
오늘도 모슬포엔 모래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오는 곳을 향해 꼿꼿이 고개 쳐든
저 괭이갈매기

 

-정군칠의 ‘모슬포에는 모래바람이 분다’ 전문

 

▲ 드론으로 찍은 알뜨르비행장 전경. <2017 제주 비엔날레 제공>

오늘의 바람난장 장소는 알뜨르비행장이다.
알뜨르는 제주에서 가장 드넓은 평지를 이루지만 이러한 입지적 조건으로 인하여 뼈아픈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중국 대륙을 침략하기 위하여 일본이 전초기지로 삼아 비행장을 건설하였던 곳이다.
전체 80만 평으로 그야말로 알뜨르는 당시 일본군의 요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행장 건설을 하며 하루에 5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강제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가미가제호 항공기 조종사들을 훈련시켰고 1937년 12월 13일에는 일본군이 이곳에서 비행기를 띄워 난징을 점령하여 시민 30만 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일본은 마치 본토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중간 기착지 없이 난징으로 날아가 폭격을 감행한 것처럼 선전함으로써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침 이곳에서 ‘제주비엔날레 2017 투어리즘’의 하나로 ‘알뜨르 문화예술공간 조성’이 이루어져 있어 하나의 거대한 전시공간으로도 보였다.
김해곤 화가의 작품인 ‘한 알’을 비롯하여 십여 개가 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아픈 상처의 흔적들과 부딪쳐 느끼게 될 가슴의 통증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 나종원 연주가가 색소폰 연주로 ‘광야’, ‘초혼’을 선보이고 있다.

난장 식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커뮤니티 퍼니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공간은 ‘자유 큐브’를 설치한 IVAAIU의 또 다른 작품인데 마을 주민들과 관람객이 햇빛을 피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의 기능과, 소규모 작물을 재배, 수확, 저장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춘 설치물이다.
각자 편안한 자세로 하늘과 바다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그 시간 동안 나종원 색소폰 연주자가 ‘광야’와‘초혼’을 들려주었다.
멀리 황금빛 천으로 이뤄진 대형 구 작품인 ‘한 알’이 흔들림으로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두 편의 시를 품고 수확을 끝낸 고구마밭과 수확을 기다리는 무밭을 지나 격납고를 향해 걸어갔다.
알뜨르 인근 격납고는 현재 19개가 남아 있는데 그 중 2-3개만 약간 함몰되어 있으며 대부분 원형을 유지한 채 주변 경관과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애자 시인의 ‘알드르 보리밭’과 정군칠 시인의 ‘모슬포에는 모래바람이 분다’를 낭독하고 듣고 생각에 잠겼다.
만약 1945년 일본의 항복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잠시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김정희 시낭송가가 이애자 시인의 ‘알드르 보리밭’을 낭독하고 있다.

바람난장의 마지막 순서로 이애자 시인이 쓴 ‘백조일손(百祖一孫) 현장을 찾아서’라는 현장답사 기록을 시인의 음성으로 직접 낭독해 주었다.
모슬포 절간고구마 창고에서 출발하여 대정중학교를 지나 신사동산을 향하고, 섯알오름 학살현장을 지나 백조일손 파괴된 위령비 앞에 이르는 동안의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아픈 과거의 흔적과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인 알뜨르 비행장!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두 개의 섬은 역사의 순간마다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처럼.

 

글=손희정
그림=김해곤
섹소폰 연주= 나종원
시 낭독= 김정희, 손희정
현장스케치 낭독=이애자

 

*다음 바람난장은 12월 2일 오전 5시 제주문화포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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