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소 잃고 외양간 고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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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논설위원
외양간이 망가지면 그 안에 있는 소들은 멀리 도망가버리기 일쑤다. 소 주인들이 애지중지 키워온 소들을 어이없이 잃어버리는 이유다. 그때 허물어진 외양간을 수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해서 달아난 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다. 평소엔 가만히 있다가 일을 당하고 나서야 뒤늦게 손을 쓴다는 뜻이다. 일을 그르친 뒤엔 제 아무리 뉘우쳐도 소용없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시험을 망친 다음에 시헝공부를 하는 꼴이다. 사자성어론 망우보뢰(亡牛補牢)라고 한다.

▲현장실습은 말 그대로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실습하는 거다. 이를 통해 지식과 기술을 몸에 익히고 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취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업체와 취업률을 높이려는 학교 등의 이해관계가 맞으면서 본래 목적이 퇴색된 지 오래다.

현장실습생들은 대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 비해 형편 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다. 근로시간도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 심지어 일부 업체들은 실습생들에게 위험한 일을 떠넘기기까지 한다. 사실상 인권과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또 다시 그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한 어린 청춘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도내 한 음료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 도중 불의의 사고로 숨진 특성화고 3학년 고(故) 이민호군의 얘기다. 이군의 안타까운 비극은 안전 대책 없는 현장이 부른 예고된 참사다.

이군은 지난 7월 말 해당 업체로 실습을 나갔다. 이후 그는 노동자였다. 업체와 별도 근로계약을 맺고 일반 직원과 동일하게 일한 거다. 때론 하루 12시간이 넘는 중노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그는 관리자 없이 홀로 작업하다 사고 발생 열흘 만인 지난달 19일 세상을 떠났다.

▲교육당국이 이를 계기로 엊그제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내년부터 전면 폐지키로 한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한데 정작 당사자들인 특성화고 1, 2년생들의 반응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고 한다. 취업 길이 막힐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현장실습 폐지에 따른 종합적인 보완대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거기엔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면서 취업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다. 더 이상 소를 잃는 일이 없도록 외양간을 튼튼히 고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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