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사(突然死)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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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 제주퇴허자명상원장

우리는 뜻밖에 죽는 죽음을 돌연사(突然死)라고 부른다. “아니 그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네~ 왜? 교통사고로! 아냐, 자살이라던데?” 이런 급보(急報)에 직면하면 누구나 황당하면서도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식으로 얼른 믿음이 가질 않는다. 때로는 제발 잘못 전달된 ‘가짜소식’이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망 소식은 거의가 ‘진짜 뉴스’이다. 병(病)으로 죽었든 사고(事故)로 죽었든 일단 세상을 뜬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죽음은 우리 인간들에게 누구나 맞이하는 숙명(宿命)이다. 마치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四季)와 같고 자고나면 사라지는 어쩌면 이슬 방울과도 같은 우리의 인생을 그래서 예부터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 불렀을 것이다.

유가(儒家)의 인명재천(人命在天)이나 불가(佛家)의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처럼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바람앞의 등불(風前燈火)이었으면 인명(人命)을 그렇게 풍자해 왔겠는가.

아무튼 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연(必然)이며 불가항력(不可抗力)이어서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죽음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식의 소극적인 삶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올 여름처럼 그리 혹독한 무더위(폭염)속에서도 우리 삶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도전적이고 결코 죽음 같은 괴물이 찾아올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아마도 저승사자들이 데리고 가려 왔다가 구슬땀을 흘리며 너무나 열심히 사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염라대왕 앞에 보고하기를 그런 사람이 없다고 ‘허위보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삶을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죽음이 도둑처럼 다가와도 죽음을 꿈으로 삼지 않고, 언제나 우리의 꿈은 희망과 사랑과 평화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이 들지라도 소처럼 멍에를 거부하지 않고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몫을 다한다.

나는 종종 인문학 강의를 통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엮어 스토리텔링기법으로 강의를 많이 해왔는데, 그 주된 내용가운데 ‘주인공(主人公)’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면서 시간에 쫒기고 일과 사람들에게 끌려 다니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것은 ‘주인공’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노예의 삶이요 포로의 인생이다. ‘주인공’의 삶은 자신의 인생을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악단을 지휘하듯이 자신의 삶을 지휘해야 한다. 크고 작은 인생의 모든 의사 결정이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포로가 아닌 ‘프로(주인공)’의 인생을 사는 삶이라는 뜻이다.

최근에 참으로 아까운 분들이 내 곁을 주검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작년에는 한국야구계의 전설인 전 KBO사무총장이자 야구해설가 하일성(心農) 선생을 잃었고, 올해는 얼마 전 제주표선홀스랜드 강경구(馬石) 관장을 보냈다.

이 두 분에게 나는 각각 심농(心農:마음의 농사꾼)과 마석(馬石:말처럼 부지런하고 돌처럼 의지가 강함)이라는 아호를 지어 선물한 바 있으며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런 비보(悲報)를 받고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죽음은 예보(豫報)가 없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반드시 사라진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 법칙은 그 누구도 거스릴 수 없다는 진리 앞에 숙연해질 뿐이다. 우리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죽음을 지켜보면서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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