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입도 5세에 이르러 발흥…여성이라 족보에 이름 없는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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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인 양천허씨 원묘-송당 체오름을 조산, 성불오름을 안산으로 삼은 형국
원묘로 무덤 연구에 중요…부씨 가문과 혼인 7남 2녀 둬
▲ 자좌오향(子坐午向) 인 양천 허씨 산도.

▲역사의 반영, 족보


족보는 집안의 세대 내력, 즉,  그 기원은 왕실의 세가(世家)를 기록하면서 시작되었다.


족보는 성(姓)씨와 매우 밀접하여 현재에도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는데 자신의 성이 명문 가문임을 증빙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성은 중국의 고대사회에서부터 생겨났다. 고위 관직이었거나 전쟁에서 공을 세우게 되면 왕이 직접 성을 내렸다.


성이 있는 사람들은 특권을 누리는 귀족계급이 되었다.

 

시대를 지나면서 성이 많아졌는데 백사람에게 성을 주었다는 유래에 따라 백성(百姓)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까지만 해도 성이 없었다.

 

삼국시대가 되면서 점차 귀족 중심으로 성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고려 중기에 와 호적을 만들면서 거주지를 쓰게 되었고, 그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 바로 본관이 되었다.


족보에 나타나는 입도조의 본관들이 각 고을의 이름을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부 이씨, 진주 강씨, 경주 김씨, 원주 변씨 등을 예로 보더라도 모두가 고을 이름을 본관으로 둔 것이다. 족보는 부계(父系) 중심으로 기록되면서 여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딸은 시집가더라도 아버지 아무개의 딸로 표기되고 이름도 없이 경주 김씨, 제주 고씨. 전주 이씨 등 본관 성씨만 기재돼 있어 모계의 계보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족보는 가부장제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이념을 잘 들어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족보에서 조상을 지칭할 대 세(世)와 대(代)가 있다. 세(世)는 자신을 포함한 손(孫)이고, 대(代)는 자신을 뺀 조상(祖) 차례이다.


가령 자신의 시조가 박혁거세이고 자신은 그의 5세손이라면 자신이 속한 대수이다.


즉 1세(박혁거세)-2세손-3세손-4세손-5세(나)로 박혁거세 5세손이 된다.


반대로 박혁거세가 자신으로부터 4대조라면, 이때 자신을 뺀 대수가 된다.


즉, 1대조(박혁거세)-2대조-3대조-4대조-(나)인데 자신을 빼고 대수를 헤아리기 때문에 박혁거세는 (나)의 4대조가 된다.


우리나라 성씨는 1985년 호구 조사 때 파악된 수가 275가지였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성씨마다 족보에 연연하고 있는 것도 지난 봉건시대의 설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 유교 이념은 입신양명(立身揚名)으로 효도의 표본을 삼았고 그것이 가문을 일으키는 최고의 명예로 여기면서 족보에 기재되었다.


지나치게 과거제도에 얽매이고 무관(武官)이나 장인(匠人) 기술자보다도 펜대인 문관을 선호하는 이유도 성리학의 나쁜 여파다.


족보는 이후 가문의 혈통, 혼인 벌족, 벼슬길, 학행, 덕망과 연결되면서 사대부가로서 벌족의 기반으로 작용하였으며 또 군역을 면제받는 데 필요한 양반의 칭호를 얻는 데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였던 16세기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 중 약 40% 내외가 성이 없는 천민 층이었으며, 더더욱 양반은 17세기까지만 해도 10% 미만이었다.

 

그 후 족보의 발행이 점점 번잡해지면서 양반이 거의 전체 인구수를 점유하게 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지경에 있는 숙부인 양천 허씨의 원묘. 구(舊) 비석 대신 생몰 연대를 알 수 없는 오석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송당 지경의 양천 허씨 원묘


제주에서 원묘는 매우 중요한 무덤이다.

 

방묘가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장례문화의 끝자락이라면 원묘는 조선 초기 제주도 무덤의 형식에 속한다.

 

특히 조선 후기 대표적인 용묘가 정착하기 전의 묘제 양식을 살필 수 있고 제주 무덤의 변천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제주에서 원묘를 보기는 쉽지 않다. 송당 지경에 있는 숙부인 양천 허씨의 무덤이 바로 원묘이다.


제주의 양천 허씨 가문은 입도 5세에 이르러 발흥하기 시작했는데 허씨의 할아버지 대이다.


허씨의 할아버지는 모두 5형제인데 동악(東岳) 허영필(許榮弼), 운악(雲岳) 허영림(許榮林), 남악(南岳) 허영집(許榮輯), 서악(西岳) 허영보(許榮寶), 한악(漢岳) 허영종(許榮宗)이다.


이 5형제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가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해 제주에 낙향하여 정의(旌義) 돈원(敦原: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으로 옮겨 살았다고 전한다.


숙부인(淑夫人) 양천(陽川) 허씨(許氏)는 어모장군(禦侮將軍) 부세영(夫世榮, 1510~?)의 처이다.

 

어모장군은 무관 벼슬로 정3품 당하관의 품계이다. 숙부인은 정3품 문·무인의 외명부  칭호로 남편의 직위에 따라 칭호가 붙여졌다.


숙인(淑人)이라고도 한다 숙부인 양천 허씨 무덤은 송당 지경의 체오름(體岳)을 조산으로 하고 성불오름을 안산(案山)으로 삼은 자좌오향(子坐午向)의 원묘이다.


양천 허씨는 가선대부 허선손(許先孫)의 딸이다.

 

허씨의 아버지 허선손(許先孫)은 허손(許愻)의 6세손으로 동악(東岳) 허영필(許榮弼)의 아들이다.


허선손의 자(子)는 계선(繼善), 호는 대연(大淵)이다.

 

서기 1484년 갑진(甲辰) 6월에 태어나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학식이 뛰어났다.


17세에 이미 좌수를 역임하여 인품과 덕망이 높았다고 한다.

 

병인년에 부사직(副司直)으로 벼슬에 나아가 중종(中宗) 무자년(戊子年, 1528)에 어모장군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워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명종(明宗) 갑자(甲子, 1564) 9월 11일에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는 그에게 숭정대부(崇政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허씨의 어머니는 정경부인 연주 현씨(延州玄氏)로 문학에 재능이 있는 요조현숙(窈窕賢淑)이었다.

 

즉 어질고 요망진 문기(文氣)가 있는 여성으로, 당시 여류문인과 친교가 있었다고 전한다.


허씨는 부군(夫君) 부세영과 슬하에 7남 2녀를 두었다.

 

양천허씨 제주파보(陽川許氏 濟州派譜)에는 허씨의 기록이 전하지 않으며, 제주 부씨족보(濟州夫氏 族譜)의 남편 부세영의 기록에도 생졸 연대 없이 배필로만 간략하게 소개되었고 부세영 또한 벼슬 이외에 자세한 기록을 알 수가 없다.    


허씨의 원묘에는 구(舊) 비석 대신 오석의 비석이 세워져 있고 생몰 연대를 알 수 없다.


허씨의 산담은 나지막한 편이다. 넝쿨들이 산담을 거의 덮고 있었으나 겨울이면 잎이 떨어져 산담의 모습이 잘 보인다.

 

들판이었으나 밭이 된 봉긋한 지형에 조성된 허씨의 무덤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문인석 두 기가 있다.

 

허씨의 아버지가 서거한 연대가 16세기 중후반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적어도 허씨 무덤의 화강암 문인석은 16세기 후반의 양식임을 알 수가 있다.


복두공복상은 이미 고려시대에 보편화되어 조선에까지 이르렀는데, 양관조복상은 조선 초기까지 유행하던 복두공복상 이후 서서히 출현하여 조선의 사대부 무덤을 장식하였다. 


상석은 석상과 같은 화강석이다. 산담의 앞면 길이는 16.8m이고 측변길이 17.5m, 뒷면 길이 12m로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산담의 넓이는 180~190cm. 산담 높이는 60(뒷쪽)~80cm사이다. 신문(올레)은 우측 에 트였으나 흙에 묻혀 구분이 잘 안 된다.


원묘의 높이는 1.2m, 지름이 5m이다. 지절은 만들지 않았고 현무암 토신단이 있다.


원래 방묘와 원묘는 제절이 없이 만들기 때문에 용묘처럼 용미지절과 토신단이 없다.


산담은 좌측보다 우측으로 2도쯤 더 기울었다.

 

산담의 돌은 붉으스름한 속돌로 막돌(잡석) 쌓기를 하면서 유연하게 선을 잡지 않았고 마소를 막는 담장으로 쌓았다.


양천 허씨 원묘의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절(계절)이 없다는 것이고, 상석과 문인석이 육지의 화강석이라는 점이다.

 

허씨의 원묘 조성연대는 남편 부세영의 탄생 연대(1510)로 미루어 16세기 후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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