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 천상병은 ‘귀천(歸天)’이라는 시에서 이승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했다. 그의 표현처럼 삶의 끄트머리에서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마치 즐거운 나들이 왔다가 떠나는 것처럼 홀가분한 심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한 건 죽음은 피할 수도 없고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현세의 고통에서 구원되고 미지의 여행을 떠난다기 보다는 모든 게 여기서 끝이라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게 우리네 인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존엄한 존재라고 배워 왔다. 허나 죽음에 이르러 인공호흡기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면 과연 그 존엄성이 지켜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절로 일게 된다.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겠다는 ‘웰다잉(Well dying)’. 그 논의는 연명치료가 존엄성을 해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품격 있는 죽음이야말로 삶의 존엄을 완성하는 과정이라 본 게다.

2010년 미국의 한 종합병원에서 폐암 말기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치료법을 적용했다. 한 그룹은 통상적인 암치료를, 다른 쪽은 기존 치료에 완화치료 전문가 상담을 받았다.

완화치료를 경험한 환자들은 화학요법을 중단하고 호스피스 케어를 일찍 선택했지만 생존기간이 25% 늘었다. 이 사례를 통해 생을 어떻게 마감할지에 관한 ‘대화’가 실험 의약품이었다면 FDA(미 식품의약국)가 승인했을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선택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 2월 시행을 앞둔 일명 ‘웰다잉법’ 시범사업이 추진된 지 한달 남짓이다. 그간 합법적 연명의료 중단으로 죽음을 택한 환자는 7명이었다고 한다. 말기 환자 중 여기에 동의한다는 계획서를 작성한 이도 11명에 머물렀다.

반면 건강한 사람이 동일한 내용을 신청한 의향서는 2200건에 가까웠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주저하는 환자들과 질 높은 죽음을 소망하는 일반인의 교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웰다잉 여건을 갖추려면 고통을 줄여 마지막 시간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호스피스 환경을 구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식물을 들이거나 학교와 연대해 아이들의 생명력을 접목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다.

젊어서 풍족하고 보람 있는 삶도 중요하지만 나이 들어 비참한 말년을 보낸다면 무슨 소용인가. 100세 시대를 맞아 아름다운 끝자락을 고심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