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버스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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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 초빙교수/논설위원

드디어 제주도 버스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승객들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운전사가 생겼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던 인사말이 어느덧 햇살처럼 따스해졌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존중 받는 듯한 만족감에 입가로 미소가 스며든다. 올 겨울은 따뜻하겠네.

그리고 버스가 시간표에 맞춰서 도착하고 출발하는 게 기다리는 이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출·도착 시간까지 정확하게 예고해 주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때로는 출발 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정류소에서 정차하는 버스도 등장했다. 그 여유와 예의가 왠지 선진 사회로 진입한 것 같은 신뢰감, 비로소 버스에도 품격이 깃들려나 싶은 기대감을 일으킨다.

더 가시적인 버스 개혁의 압권은 제주시내의 버스전용차로다. 그곳에 들어서면 바야흐로 버스가 거리의 개선장군으로 변신한다. 주춤거리며 늘어선 자동차 행렬을 제치면서 목적지를 향해 거리낌 없이 달려가는 버스는, 승객들에게 만족감과 우월감을 통쾌하게 선사한다. 이제 버스는 더 이상 2등 시민이 타는 저급의 운송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의 러시아워를 뛰어넘는 특별한 교통 대안, 약속 시간을 지키게 하는 스마트한 선택지다.

하지만 버스가 오래도록 운영해 온 습관들은 아직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최대의 고충은 버스 내 안내방송이다. 다음 정류소를 예고하는 소리가 얼마나 무지막지 하게 크게도 울리는지, 귀청이 따갑고 머리가 멍멍하다. 소리가 터져 나오는 스피커를 피하다 보면 버스 안을 옮겨 다니는 메뚜기가 된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소음의 안전지대는 버스의 맨 뒤꽁무니. 그곳에 앉아서 승객들을 관찰하면, 대부분이 스피커를 쳐다보고 차내를 둘러보다 눈을 감는다. 까다로운 고객이 상품의 품질을 올려놓는 법, 그 인내가 온순함을 지나서 무심해 보인다. 서울의 지하철 소음이 지금처럼 관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승객들이 까칠하게 굴었는지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차내 방송 못지않게 운전석 뒤에 부착된 TV 모니터도 오래 묵은 고질적 불편이다. 교통질서 계도, 버스이용 촉진, 공공 정책 안내 등이 반복되는 화면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지겨움이라고나 할까. 똑같은 내용이 승차 시간 내내 몇 차례씩 반복되면, 질리다 못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짜증스럽다.

그 일방적인 당국의 맹목성에 시민이 반응할 수 있는 대안이란, 시선을 돌려서 창 밖을 응시하는 것. 차라리 수도권의 공항철도처럼 국내외 뉴스를 알려주거나 관광지·축제·행사 안내, 유료 광고로 시청률과 수익성을 높여보면 어떨는지.

출퇴근 시간대의 배차 간격과 차종 또한 이전보다 개악된 상태에서 고착화될 조짐이다. 특히 5·16도로의 경우는 이전보다 배차 간격이 길어져서 출퇴근 시간 대기승객이 현저하게 늘었다. 그럼에도 배치된 버스는 좌석 수가 시외버스보다 4분의 1가량 적은 시내버스가 태반이다. 병원행 어르신들이 1시간 넘게 서서 가지만, 학교행 젊은이들은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자리를 양보하기엔 부담스레 긴 아침 시간, 언제까지 불편한 심기로 서로의 남루한 마음을 외면해야 할 건가.

버스를 타다 보면 가슴 시리도록 찬바람이 들어찰 때가 있다. 운전사가 기다리는 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질주해버릴 때, 빨리 승차하지 않는다고 눈치주며 타박할 때, 과속과 곡예 운전으로 승객을 내동댕이칠 때, 굼뜨게 하차한다고 노약자를 면박줄 때, 우린 한없이 왜소해진다.

바라기는 ‘어서 옵서, 잘 갑서’라는 제주어도 좋으니, 이제는 운전사들이 한결같이 푸근했으면 좋겠다. 기상청의 날씨 전망에 의하면 올 겨울엔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날들이 많다고 한다. 모쪼록 제주도 버스들이 밀려드는 승객들을 따뜻하게 품고서 개점 대박의 훈훈한 소식들을 드높이 날려줬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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