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선 범섬·문섬·섶섬이 詩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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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제주교육박물관
▲ 마흔 아홉 번째 바람난장이 제주교육박물관에서 진행됐다. 강부언 作 ‘제주폭포절벽에 시를 쓰다’.

서귀포에는 내가
달맞이꽃이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다
바다 남빛 물결에
피는 꽃
수백송이 흩으려 놓고
자지러지다가도
정작은 수줍은 달맞이꽃이
되고 싶은,

 

서귀포에는 내가
휘파람새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다
이젠 반쪽의 자리가 비어도
슬프지 않고
아침 식탁에 수저가 한 벌이어도
외롭지 않다고
잠시 휘파람새가 되어 보는,

 

서귀포에는 내가
삼매봉이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다
어느 날 찾아가
시와 그림을 보고
한 바퀴 돌아 내려와
새섬 앞 통통배 소리처럼
떠내려가는 나를
잡아주던
그 봉우리 같은

 

-나기철의 ‘서귀포에는 내가’ 전문

 

▲ 김남훈 연주자가 타악기 마림바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서귀포에 가면 누구나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저 달맞이꽃 같은, 휘파람새 같은, 삼매봉 같은 애인이 기다리는 곳.


누군들 사랑이라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12월 첫 주 토요일 저녁 제주교육박물관 뮤지엄 극장에는 숨죽인 듯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김장명 낭송가가 ‘서귀포에는 내가’를 낭송하고 있었다.


사단법인 제주시낭송협회(회장 이금미)는 올해 마지막 정기 시낭송회를 큰 판으로 펼치고 있었다.


타이틀에서 이미 그렇게 느껴졌고, ‘제주를 품은 아름다운 시 20편과 만나다’는 기획과 연출에 얼마나 많은 땀과 열정이 녹아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사실 20세기까지만 해도 시인과 독자를 잇는 배달부의 역할은 문자가 감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의 전달 통로가 다양해졌다.


시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것이 시낭송일 것이다.


제주시낭송협회 회원들은 시를 음성으로 전달하면서 시의 진정성과 독특한 가락으로 제주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고 소통하면서 서정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극장 입구서부터 김남훈의 타악기의 마림바 연주로 감정이 고조되고, ‘앵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울에서 온 이승은 시인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제주의 아름다운 시 20편에 추천되어 그 기쁨에 설레고 따뜻합니다. 오늘 제주에서의 겨울밤 마음껏 행복해 지겠습니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이어서 최옥주 낭송가의 피아노의 음률과 함께 서정주의 ‘고을나高乙那의 딸’이 석류꽃처럼 번지는 낭송이 이어진다.

 

▲ 바람난장 가족들과 제주시낭송협회 회원들의 모습.

이승은 시인의 ‘조천朝天바다’  청보리 바람결에 물빛 더욱 짙은 바다/ 그 모든 푸름에는 눈물 맛이 배어있다/ 를 박연순 낭송가의 낭송으로 물빛 짙게 가슴을 적신다.


사계절의 그 봄을 맞이하는 지점에서 2인조의 난타공연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양전형 시인의 ‘절물 연꽃’을 최현숙 낭송가의 음성으로 유배의 작은 호수로 안내한다.


간절하면 아득히 심연으로 내려갈 수 있는지, 오시현 낭송가의 낭송으로 정일근 시인의 ‘제주에서는 어멍이라는 말은’ 방울을 달아 멀리 물속을 다녀온다.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을  김영남 시인의 ‘모슬포에서’, 김순자 낭송가의 낭송이 이어졌다.


가을의 심연으로 빠져들 쯤 김종호 시인의 ‘가을에’를 정삼권 낭송가의 낭송으로 낙엽 같은 불빛에 위로를 받는다.


사계절의 시 낭송은 편편이 가슴에 스며들어 겨울밤이 어느새 따뜻해져 깊어갔다.


이 겨울 추위는 거뜬히 견딜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그야말로 시공을 넘어 산과 바다 들판과 오름을, 주변 섬들을 그 짧은 시간에 다녀왔으니 겨울은 춥지 않을 것을 새해는 더욱 풍요로울 것임을 직감한다.


낭송의 짜임새 있는 공연과, 시의 개성을 살린 낭송으로 시의 흐름을 음미하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홀 안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전국의 시인들의 제주를 품은 시와 함께한 두 시간 여의 교감은 송년의 밤을 환히 밝혀 서로를 받아들였으리라.


사계절을 돌아 나온 시낭송에 이어 김재현 바이올리니스트의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로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밤을 더하며, 12월 한 달 남은 달력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송년의 들뜬 분위기 탓인지 경품 추첨도 있었다.


참가자 중 열 명이 선정되어 강용준 작가의 소설을 비롯해서 김종호, 나기철 시인 등의 저서가 증정되면서 웃음과 신명 속에 대미를 장식했다.


그렇게 겨울밤은 바람난장과 제주시낭송협회의 시낭송으로 시의 향기가 진하게 번져갔다.


제주의 바람, 바다와 산, 야생화와 그 목소리를 닮은 모든 시詩들이 송년의 밤을 따뜻하게 밝혔다.

 

-글=김윤숙
-그림=강부언
-바이올린 연주=김재현
-시낭송=사)제주詩낭송협회
-사진=허영숙

 

※다음 바람난장은 12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귀포 왈종미술관 앞 남영호 추모공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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