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앞에서
겨울 앞에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겨울이 한 발 앞서 입성하는 곳은 아무래도 시골일 것이다. 곤궁했던 시절엔 의외로 잰걸음이었다. 조 까끄라기 아니면 마른 나뭇가지 따위로 구들방 지피던 때라 갈바람이 인다 하면 야음을 틈타 코앞에 겨울이 와 있곤 했다. 도시의 달동네엔 그나마 연탄이 언 몸을 녹였다. 도농의 격차는 예나 제나 고만고만하다.

시골서 나고 자라 모질이 겨울을 났던 내성(耐性) 덕에 혹한도 두렵진 않다. 한데 돈 주고 못 산다는 초년고생도 호사에 겨워 한순간에 허물어진다. 연탄을 거쳐 가스가 들어오고 보일러로 방이 후끈거리자 추위에 강하던 몸에 밴 근기가 하루아침에 빠져나간다. 버릇은 잠깐이다.

11월 소슬바람 기척이 났다 하면 보일러를 켜야 한다. 첫 추위에 몸을 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다. 요즘 서민들은 겨우내 보일러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형편이다. 퍽 하면 고장으로 서 버리질 않는가. 돌아가던 보일러가 시도 때도 없이 멎어 버리면 실내 기후대가 한대(寒帶)로 돌변하고 만다. 꼼짝 없이 하룻밤을 떨게 되니 심술보 감기가 가만있을 턱이 없다. 밤새 환자가 다 돼 있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을까.

날이 밝기를 기다려 보일러 기사님에게 하소연해 보지만, 대답이 미지근 털털하다. 현장이란다. 그 현장이란 게 어디 한두 군데라야지, 밤이 돼야 어떻게 가 보겠다고 하질 않나. 몸은 이미 동태가 돼 있지만, 통사정해 놓고 하릴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다.

머릿속이 번쩍한다. 한때 서울에 살던 여름날, 백화점에 갔다 깜짝 놀란 일, 한여름에 겨울옷이 날개 달린 듯 팔리질 않나. 그래, 미리 보일러 상태를 점검해 놓자 해, 10월 하순께 보일러를 켜 보기로 했다. 장장 사흘 동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11월의 마당에 나섰다 깜짝 놀랐다. 어느새 잎을 다 내려놓은 감나무에 눈을 주는 순간, 흠칫한 것. 나무는 어느새 겨울 앞에 서 있었다. 벌써 낙엽으로 겨울나기에 몸을 추스른 게 아닌가. 무서리에 몸 움츠리며 발가벗을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이쯤 되고 보니 사람이 나무 앞에 낯 따가울 수밖에.

마당 둘레를 휘둘러본다. 감나무가 발가벗는 낌새에 다들 잎을 내려놓기 시작이다. 단풍나무, 석류나무, 느릅나무, 매화나무, 앵두나무, 팽나무, 개나리, 무화과…. 나무들끼리 나지막이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귓전이다. 오랜 동안 이웃으로 살며 겨울나느라 동맹(同盟)이라도 한 걸까. 열외 없이 어깨 겯고 바람에 식어 갈 한 움큼 체온을 나눴을 테다. 함께 가자고, 어느 해의 겨울처럼 늘 그러는 거라고.

요즘 사람들, 근기는 어디다 뒀는지 참 섬약한 것 같다. 겨울이 처음으로 시작하는 시골에서 추위에 맞장 뜨며 자란 성장 이력에도, 어른이 되고 풍요 속에 살면서 나 또한 한없이 유약해졌다. 사람 참 변덕스럽다는 생각에 고개 수그러든다.

묵연히 겨울 앞에 서 있는 나무들, 침묵할 뿐 한마디 말이 없다. 지난여름 전례 없던 폭염 앞에도 꾹 다물었던 입인 걸 겨울이라고 무슨 말을 하랴. 시종 여상한 나무의 결기에 번쩍 정신이 든다. 나무만 못하랴 하면서 진즉 나무만 못한 게 사람 아닌가. 겨울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설령 자신에게 잇속이 없다 해도 투덜대진 말아야 할 것을, 말 할 자리에선 말 않고 뒤에서 삼가야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 뿌리박아 평생 꼼짝 않되 자리에 연연 않는 저 덕에 어찌 닿을꼬. 내명(內明)한 현자(賢者)들이다.

겨울 앞에서 겨울로 가는 나무들에 눈을 떼지 못한다. 헌 옷가지 하나까지 홀랑 벗고 선 나목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랴.

공연히 구시렁거리는가 하면, 미풍에도 휘청거리면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