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을 칠하는 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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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열 한의사·제주한의약연구원장

며칠 전 서귀포에서 서복과 관련한 한·중·일의 학술교류가 있었다. 서복은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 제주도로 왔던 사람이다. 서복이 찾은 불로초가 무엇일까에 관심이 모아지기 마련. 모 포탈 사이트에 ‘불로초’를 검색해 보면 다양한 약재들이 검색된다. 이 중에 하나가 ‘황칠(黃漆, Dendropanax morbifera Lev.)’이다. 불로초로 검색된 다른 약초들과 마찬가지로 황칠도 그 문헌적 근거가 많이 부족하다. 불로초는 차치하고라도 황칠이 한약재로 쓰인 사례 자체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중국 최초의 본초서인 365개 약재가 등재된 신농본초경에 황칠은 수재되어 있지 않다.

이후에 시대별로 등재 약재수가 계속 추가되는데, 그 본초서들에도 오르지 않았다. 2000종 가까이 되는 본초강목에도, 5600여 종 수재된 중약대사전에도 없다. 한국의 경우도 동의보감은 물론, 한의과대학의 본초학 교과서나 대한약전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일부에서 황칠의 효능으로 거풍습(祛風濕), 활혈맥(活血脈)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의 근거는 무엇일까. 아마도 황칠을 중국의 ‘풍하리(楓荷梨, Dendropanax chevalieri Merr.)’라는 약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인용한 것 같다.

‘풍하리’라는 약재는 최근 중국 어느 지방의 민간 경험방을 모으는 과정에서 채록이 된 듯하다. 공식적인 중국약전에는 오르지 못한 약재인데다 풍하리는 어혈약으로서 임신 금기약에 속한다. 조심해서 써야 되는 약으로서 불로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풍하리는 황칠과 같은 ‘속’에 속하지만 ‘종’이 다르다. 황칠은 한국의 남해안과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칠의 한의학적 효능을 언급하기에는 그 문헌적인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여러 역사 사료에서 황칠의 도료(塗料)로서의 가치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진상 품목에 포함되었고 중국에까지도 유명했었다고 한다. 황칠은 이처럼 약재로서가 아니라 황금빛을 입히는 도료로서 유명했던 것이다.

황칠을 가지고 사업을 모색하는 경우에 있어 혹여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는 환경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근거가 부족한 과장으로 신뢰를 깨뜨릴까 저어된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대과학적인 분석으로 황칠의 효능을 새로이 밝히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아쉽게도 그동안 많은 한약재에 있어 한국 고유종에 대한 차별화된 효능을 밝히는 노력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자체적인 연구와 차별화 노력이 부족했기에 중국 기원의 약재와 다르면 그 근거가 취약한 것으로 취급하기 일쑤였다.

나고야의정서 발효로 앞으로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고 생각되었던 생물자원이 해당 국가의 자산으로 귀속된다. 이에 따라 생물자원에 대한 국가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나고야의정서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의 약재를 대체할 고유의 약용자원의 발굴이 꼭 필요하다. 기존 관행을 깨고 황칠 연구가 고유 약재 개발의 선구적인 길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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