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의 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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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논설위원

여러 사람들이 보는 동영상 가운데 1년 전에 방송된 다큐가 있다. 북한을 탈출한 여성이 중국에서 청각장애를 지닌 딸을 낳고,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으로 왔다. 그 여성은 정착 과정에서 돈이 없어 아이와 함께 살지도 못하고, 필수적인 수술도 시켜줄 수 없었다. 5살 된 아이는 결국 스위스로 입양 보내지고, 7남매를 둔 부모가 맡았다.

아이 입양 4년 후 스위스 양아버지가 죽으면서 양어머니는 8남매와 홀로 남았다. 한국 친엄마는 걱정이 되어 아이를 도로 데려올까 했는데, 스위스 양어머니는 보낼 수 없다고 한다. 결국 두 엄마는 아이의 선택에 따르기로 했으며, 딸의 결정은 스위스에 남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독차지하려고 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던 아이는 스위스에서 자라며 달라졌다. 양부모는 수화를 배워 아이와 소통하고, 집에서 알파벳과 독일어를 가르쳤으며, 유치원에 보내며 언어치료를 받도록 했다. 집에서는 형제끼리 돕는 방식을 취해서, 아이는 오빠의 도움을 받았으며 자신은 동생을 보살폈다. 방송 당시 10살인 아이는 보청기를 사용하고 독일어로 대화했다. 아이는 친엄마에게 자신을 왜 입양시켰는지 묻고, 그 답이 꼭 알고 싶었다고 했다.

잘 자라는 아이 모습이 위안은 되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잘 살아보겠다고 한국으로 온 여성이 딸과 생이별하여 생물학적 엄마로만 남고, 외국인으로 성장하는 딸을 지켜보거나 직접 의사소통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기 때문일까. 자녀를 일곱이나 둔 스위스 부모도 이국의 장애아를 가족으로 받아 잘 키우는데, 그렇지 못하는 우리가 부끄러웠던 것일까. 서구 사회는 체계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발달되어 있고, 삶의 여러 방면에서 그들이 한 수 위인 듯 여겨지며,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동정심을 구걸하는 듯 열등감을 느낀 때문이었을까.

우리나라에도 장애아를 입양해서 키우는 부모들도 있고, 입양한 자식으로 인해 극심한 고생을 해도 사랑을 끊지 않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해외입양아 수는 2016년 한해에도 아기들을 포함하여 800명 이상이라고 한다.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 가족’을 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유일한 나라이며, 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또 가장 오랫동안 보내고 있는 나라이다. 출산율 저하로 국가의 소멸위기를 우려한다고 하는데도 하루에 한 명씩 아기가 버려지고, 하루에 아기 한명씩 해외로 보내지고 있다. 내일의 국민들이 버려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의 원인으로 저자는 우리사회에 뿌리 깊은 ‘정상가족’ 개념을 지적하고, 아이 양육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일임해 왔던 국가의 책임도 든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구조는 결혼제도 내에서만 가족을 인정하고, 그 외는 ‘비정상’으로 간주하며, 가족만 아이를 책임지는 상황이 배타와 차별을 강화하였으며, 지속적으로 ‘비정상’을 멸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기를 포기하는 대부분이 미혼모들인데, 이들은 부도덕한 비정상적 일탈자로 배척되고, 미혼부가 양육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드물다. 미혼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경우 받는 정부 지원금은 아기 입양 가정이나 위탁가정, 양육시설에서 받는 비용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미혼모의 아이들은 결국 국내와 해외로 입양 보내진다.

배타적인 풍토와 오로지 정상적인 가족만 인정하는 관습도 문제이지만, 생명 존중과 가족 개념의 확장이 우리 사회에 미미한 것도 가족 밖의 아기들을 위협하는 원인일 것이다. 국가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정치하는 사람들도 출산·육아·교육에 개입하고 지원하며 국민을 길러내는 정책을 더 잘 고안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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