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와 쿠살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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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논설위원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정유년(丁酉年) 끝자락이다. 이제 닷새만 지나면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다. 이날을 앞두고 도내 주요 거리와 건물 로비 등엔 형형색색 단장을 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돼 있다. 트리의 환한 불빛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나무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구상나무다. 전 세계 트리의 95% 이상이 구상나무를 쓴다고 한다. 줄기에 가지가 촘촘히 붙어 있고 높게 자라지 않아 크리스마스 트리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구상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인 셈이다.

▲한데 놀랍게도 구상나무의 원산지는 한라산이다. 영어 이름은 ‘Korean fir(코리안 퍼ㆍ한국의 전나무)’다. 제주사람들이 ‘쿠살낭’이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됐다. ‘쿠살’은 성게를 가리키는 제주어다. ‘낭’은 나무의 고어 ‘남긔’를 말한다. 구상나무 잎이 성게의 가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게다.

구상나무는 1907년 제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프랑스 신부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그 뒤 영국 식물학자 윌슨이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를 1920년 학계에 보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품종 개량을 거치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지금껏 크리스마스 트리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구상나무는 키가 별로 크지 않고 수형이 아름다운 늘푸른 침엽수다. 한라산 해발 1300m에서 백록담 정상까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 전체에 광범위하게 분포해 그 면적만 803.6㏊에 이른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간다’는 주목나무처럼 죽고 나서도 오랜 세월 고사목으로서 늠름한 자태를 자랑한다.

그중 겨울날 어느 순간 일제히 피어나는 구상나무 상고대(나무서리)는 보석보다 더 영롱하다. 우렁우렁 상고대를 매단 구상나무 숲이 펼쳐내는 눈꽃터널은 겨울산행의 백미로 꼽힌다. 눈 덮인 요즘이 딱 안성맞춤이다. 그런 점에서 구상나무 군락지는 한라산만이 가지고 있는 보물인 듯하다.

▲하지만 그 보물이 지금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집단 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속도라면 다음 세대에선 구상나무를 식물도감에서나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제주도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ㆍ아열대산림연구소가 구상나무를 살리기 위해 자생지 복원에 발벗고 나선 이유다.

때맞춰 엊그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미생물의 일종인 균근균을 활용해 구상나무 복원에 도움을 주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게다. 실제 적용에서도 큰 효과를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상나무 없는 한라산은 상상할 수 없기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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