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그 바위를 끊지 않았더라면, 부씨 장군이 계속 났을 것이다”
(60)“그 바위를 끊지 않았더라면, 부씨 장군이 계속 났을 것이다”
  • 제주신보
  • 승인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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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렴의 방묘-부유렴, 부씨 1세 부언경의 5세손·父는 부삼노 통훈대부
호석 두른 부부묘…장명등이 벽사·망주석이 능의 입구 알려
한라산을 태조산으로…오조리 마을 설촌 역사의 ‘이정표’
▲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지경 고장남밭 유좌에 있는 부유렴 부부의 방묘. 묘지 주변에 망주석 2기, 장명등 1기와 후대가 세운 현무암 망주석 2기가 있다.

▲가치없는 삶이란 없다


죽음하면 누구나 기피하며 인간에게는 분명 하나의 공포로 다가온다.


그렇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기쁨을 누리는데 누군가에게 소중한 자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월이 가면서 무상함을 느끼고, 안타까움, 간절함, 후회 등 다양한 감정 속에서 이별의 순간을 접하게 된다.

 

이별의 느낌이 더 절절한 이유는 살아온 기억들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가족,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소유한 많은 것들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지속적으로 괴롭힐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생애를 후회 없이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목표를 이룬 사람, 봉사든 희생이든, 누군가를 위해 생애 최고의 기쁨을 누렸다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가치 없는 삶이란 없다. 삶의 가치는 모든 사람들이 찾으려는 인간의 최후의 모습일 것이다.

 

무덤은 살아있는 우리들 미래의 모습이다. 형태가 어떻든 무덤은 오래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기념비적이다. 조형물과 같은 건축이나 무덤, 기록, 유물, 이미지 사진까지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일상과 나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남긴다.


일기든 예술작품이든 자신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기는 것, 이것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의 관점에서는 분명 “나를 잊지 말라”는 것이고 자손의 관점으로는 우리 집안의 누구이고 이러저러한 업적이 있는 조상이라는 사실인 것이다.


나와 나의 뿌리, 우리사회, 우리의 행적, 종족과 민족, 공동체의 의례들 모두 나와 우리를 기억하려는 기념비성인 것이다.


▲부유렴의 묘


부유렴의 무덤은 성산읍 오조리 지경에 있는 방묘이다.

 

비석에는 ‘어모장군 부유렴 숙부인 김씨 부좌 지묘(禦侮將軍 夫有廉 淑夫人 金氏 祔左 之墓)’라고 돼 있다. 부유렴은 성산읍 오조리경 고장남밭(花木田) 유좌(酉坐)에 모셔졌다.


부유렴은 성종 14년 계유년(癸酉年, 1483)에 태어났다.

 

원래 부씨는 삼성신화의 한 주인공인 부을라가 시조이기는 하나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화적 요인으로 인해 ‘제주부씨세보(濟州夫氏世譜)’에는 고려시대 진용교위(進勇校尉) 벼슬을 지냈던 부언경(夫彦景)을 제1세로 모시고 있다.

 

부유렴은 이 부언경(夫彦景)의 5세손이다.


부유렴의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부삼노(夫三老, 1450~1532)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순흥 안씨(順興 安氏)인데 부유렴은 그 슬하에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유렴의 아들은 어모장군(禦侮將軍) 부세영(夫世榮(1510~?)으로, 양천 허씨 허선손의 딸과 혼인을 했다.


양천 허씨는 명문가의 딸로 문필의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부세영은 양천 허씨 사이에 아들 여섯을 두었다. 어모장군은 조선시대 정3품 당하관의 무관 벼슬이다.


부유렴 부부의 방묘에는 옛 것으로 보이는 망주석 2기와 장명등 1기, 후대가 세운 현무암 망주석 2기가 있다.

 

옛 망주석은 조면암으로 만들었는데 무덤을 표시하는 기능이 있다.


좌측 망주석의 높이는 118㎝, 두께 22㎝정도, 우측 망주석 높이 115㎝, 두께는 24㎝, 사각 기둥 형태인데 모서리를 다시 면으로 처리했다.


망주석 머리는 둥근 원으로 만들었고, 기둥 중간 부분에 사각형의 띠를 둘렀다.

 

망주석의 유래는 한나라 때부터 능의 입구에 세워져 화표주(華表柱)라고 하여 능의 입구를 알리는 표시 기능이었다.

 

조선시대 왕릉에는 동쪽 망주석에는 올라가는 다람쥐를, 서쪽 망주석에는 내려가는 다람쥐를 새겼다.

 

장명등은 무덤에 불을 밝히는 기능이었지만 상징적으로는 사악한 기운을 쫓는 벽사의 기능이 있다.


장명등은 망주석과 모양이 비슷한데 다른 점은 3면에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이 뚫려있다는 것이다.

 

장명등은 망주석과 마찬가지로 흰빛의 조면암으로 만들어져 세월이 갈수록 더욱 하얗게 보인다.

 

장명등의 높이는 117㎝, 넓이는 22㎝이다. 방묘는 고려시대 양식이다.


부부의 무덤은 방묘 측면으로 무너지지 않게 후에 후대들이 호석을 둘렀다.

 

1986년까지만 해도 호석 대신 시멘트로 낮게 방묘를 둘렀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겠지만 1987년 봄에 다시 지금의 현무암 판석으로 호석을 두른 것이다.

 

현재 방묘의 봉분 높이는 좌측이 110㎝, 우측이 120m 정도이다. 방묘의 크기는 두 기가 같은데 가로 305㎝, 세로 450㎝이며 직사각형 모양이다.

 

현재 호석이 높이는 70㎝로 현무암 판석으로 만들었다.


부유렴 방묘는 한라산을 태조산으로 삼아 안산이 식산봉을 바라보고 있다. 좌측으로는 지미봉을, 우측으로는 수산봉을 끼고 있다.

 

사람들은 이 부유렴의 방묘를 보고 오조리 마을 설촌에 대한 역사적 자취를 찾기도 한다.

 

▲ 부유렴의 산도.

▲부유렴 방묘에 대한 설화


‘햇빛 비치는 마을 오조리’에 고장남밭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안가름의 ‘고장남밭’에는 제주 부씨 도선묘인 부유렴(夫有廉)의 아버지 삼노(三老)의 묘 역시 여기서 머지않은 구좌읍 하도리 목장 안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들이 이 부근에 살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 무덤에서 밭 두어 개를 사이에 두고 은진 송씨의 입도조인 송동보(宋東寶)의 무덤이 있다.

 

그의 자손은 지금까지 오조리에서 11∼12대를 살아오고 있다.

 

이 같은 근거에 따라 옛 마을인 안가름의 형성을 적어도 450년 이전, 새가름도 350년쯤 전에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또 이 책에 실린 ‘부댁 도선묘(夫宅 都先墓)’라는 설화는 부유렴의 방묘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조리 안가름에 부댁 도선묘가 있다. 이 묘에 서서 바다 쪽을 보면 오조리의 식산봉이 바로 가까이 보이는데, 이 봉우리에 서 있는 바위 하나가 유난히 띈다. 이 바위를 장군석이라고 하는데 이 장군석이 똑바로 비추기 때문에 부씨 댁에서는 장군이 나기 마련이다. 어느 해 관아에서 이 사실을 알았다. 관아에선 몇 번의 조사를 한 후, 이 장군석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장군이 나라 역적이 되고 나라가 어지러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큰 톱을 가져다 이 장군석의 꼭대기를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때 톱으로 끊어가니 장군석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고 한다. 만일 그 장군석을 끊지 않았더라면 부씨 댁에서는 장군이 끊임없이 났을 것이다. 아깝게도 그 바위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장군은 아니 났지만 몇 대에 한 사람씩 장사가 나오곤 한다. 부대각도 그러한 장사의 한사람이다.”


이 설화는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수설화다.

 

장수설화는 아기장수, 오찰방, 심돌 부대각 등 대정현, 정의현을 넘나면서 좌절한 영웅들에 대해 여러 유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설화는 분명 유교의 체제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있다.

 

특히나 조선의 최고 위험한 변방으로 조선의 위정자들은 단지 왜적을 두려한 것만이 아니라 내부의 백성들까지도 두려워 한 것이 사실이었다.


제주는 역사적으로 민란이 많은 땅이었다.

 

유배인과 결탁하거나 민중 스스로 일으킨 민란이 변방의 위험요소였기에 이런 좌절한 장수의 이야기는 언제나 관이 승리한 것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민중 스스로 장수나 장군이 될 기미가 보이면 아기 때나 혹은 그것의 징조들을 제거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체제에 순응하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실 전해오는 장수 설화들 중 민중의 승리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이 부유렴의 묘지 설화도 부씨 집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왕조의 감시 아래에 놓인 전 제주도 민중의 역사적 맥락의 이야기이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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