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메시지…우리를 이끌어갈 ‘공동의 담론’
성탄의 메시지…우리를 이끌어갈 ‘공동의 담론’
  • 제주신보
  • 승인 20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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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8년 8월에 처음 러시아를 찾아갔다. 동료 목사와 함께 선교지를 찾아가는데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갈아타는 일들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언어 소통의 문제였다.

갈 때는 다른 여행객들과 어울려 갔는데, 돌아올 때는 동료 목사와 둘이서만 오게 되었다. 만일을 위해 출발시간보다 다섯 시간이나 먼저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영어로 소통할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출국 신고서 같은 것들이 다 러시아 말로만 되어 있었고, 영어로 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에서 지친 표정을 하고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동료 목사님이 자리를 비웠다. 한참 후에 그는 보기 드물게 아름답고 날씬한 젊은 여성과 함께 나타났다. 그 여성은 한국인인데, 우리의 출국절차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여성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지적으로 보이고 러시아말도 잘 하는 이 여성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 여성은 우리에게 여권과 출국신고서를 손에 들게 한 다음 앞장서서 걸어갔다. 어찌된 일인지 거칠게만 보이던 러시아 경찰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아주 잠깐 동안에 수속을 마치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놀랍기만 했다.

우리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간 후에 그 여성은 자신은 발레리나라고 소개했다. 오래 전 중학생 때 유학와서 지금은 러시아의 어느 발레단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 발레단에 동양인은 자기 혼자라 했다. 비행기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갈 때는 이런 말을 했다. “혹시 뻬쩨르부르그에 오시면, 마린스키 극장에 오셔서 저를 찾으세요. 제가 자리를 마련해 드릴게요.”

우리 목사들은 발레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온 며칠 후 어느 일간지에서 그 발레리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세계적인 러시아 발레단에 소속된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글도 나와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구나! 언젠가 뻬쩨르부르그에 가면 그 극장에 한번 가봐야지!” 하던 것이 이제 20년 세월이 흘렀다.

교회의 목사가 왜, 성탄의 메시지라 하면서도 성탄절에 어울리기 어려울 듯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북학의 핵 문제로 인한 위기감이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런저런 크고 무거운 뉴스들이 들락날락하면서 평창 올림픽이 부각되기 어려운 듯하다.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우리를 어디론가 급하게 몰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아직 그대로이다. 마음을 합하여 어려운 시대를 뚫고 나가야 할 때인데 우리의 내적 소모전은 해결 조짐이 잘 안보인다.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성탄절에 우리 사회는 나름대로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어느만큼 가면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의 담론'을 논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세계사의 미로를 헤쳐나갈 공동의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해서이다.

이제 40대가 되었을 모스크바 공항의 그 여성이 혹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뒤늦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이런 질문 겸 부탁도 드리고 싶다. “우리를 이끌고 모스크바 공항을 헤쳐나가던 그 일을 혹시 지금도 할 수 있으신지요?”

갈등과 분열 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세계사를 함께 헤쳐나갈 공동의 담론에 관심을 가질 것을, 2017년 성탄의 메시지로 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