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扶助), 음양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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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얘야, 죽 다 쑤어져시냐?”
“예, 다 되어 감수다.”

 

내가 중학시절인 5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비가 내리는 새벽녘이면 두런두런 들려오던 할머니와 어머니 목소리가 환청인 듯 내 귓가를 맴돌 곤 한다.

 

이른 봄으로 기억되는 그 날. 두 분은 비를 맞으며 먼 곳에 있는 사돈댁까지 팥죽허벅을 지고 갔으리라.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그 고행길이 있었기에 상을 당해 경황이 없던 사돈댁에서는 성복하기 전에 온 친척과 조문객들에게 따뜻한 팥죽을 대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당시는 현금 부조라는 게 없었다. 곡식 아니면 경조사에 필요한 현물을 가져가면서 집안에 보탬을 주었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면서 대소사를 치렀다.

 

가난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여인네들이 물을 길어다 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던 부조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과 문화 그 자체였다. 조냥정신과 수눌음으로 대표되는 상부상조문화가 있었기에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삶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젠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상부상조문화가 채권채무관계로 변질되어가는 안타까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겹 부조를 넘어 계좌이체부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는 비정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친목회 취지도 무색해졌다.

 

적지 않은 공동부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개인봉투를 내민다. 이게 어인일인가? 사람들 앞에서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개인봉투에 겹부조까지 해야 하는 게 요즈음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제주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부조 때문에 다시 제주를 떠나는 일이 생긴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로가 오가지 않는 장례식장, 망인 이름보단 상주들 이름과 직책이 커다랗게 장식되는 부고(訃告), 신랑신부가 주인공이지 않은 피로연장에서 더 이상 미풍양속을 얘기할 수는 없다. 똬리를 튼 채 고개를 쳐드는 살모사를 보는 듯 부조의 어두운 그림자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시 한 번 제주의 부조문화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주말과 휴일을 잃은 제주인들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해서라도 전일제 행사로 치러지는 경조사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옳지 않을까?


개인부조에 겹 부조, 친목회공동부조까지 상주와 혼주에게 돈을 몰아주는(?) 경조사는 진정 조냥정신과 수눌음정신엔 맞지 않는 악습이 되어가고 있다.

 

인구 백만 제주시대가 멀지 않았기에 부조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경조사 이젠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파사현정(破邪顯正)’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어긋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르라 한다. 제주를 병들게 하는 적폐 곧 잘못된 부조문화를 버리라 가르치는 건 아닐까?

 

이제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한 해의 저물녘이다. 사돈댁에 부조를 위해 새벽녘부터 팥죽을 끓여야 했던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팥죽허벅을 진 그 고행 길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몹시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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