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와 투자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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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홍보대행사 컴101 이사, 전 중앙일보 기자

“안전벨트를 매면 가슴을 조이는 것처럼 답답해요.”

제주의 지인 중엔 자동차 안전띠를 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육지에선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또 몇 달 간 맸다가 불편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다.

교통안전공단이 매년 실시하는 교통안전지수 발표에서 제주는 최하위 수준이다. 그중 안전띠 착용률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거의 최하위이며, 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건수도 거의 1위권이다.

제천 화재 뉴스를 보면서 제주의 교통 안전 문제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가까운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세대 이전에는 제주의 교통 안전문화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통계는 없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제주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경건한 삶을 살았다.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아이가 아프기만 해도 ‘넋 드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음식을 차려놓고 삼신할망이나 구할망, 조왕신 등에게 정성을 드리는 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이었다.

그렇게 경건하고 절실하게 가족과 친지의 안녕을 빌었다. 그러니 신체를 상하게 하는 경거망동이란 안될 말이었다. 안전띠를 안 매서 위험하다는 걸 알면, 당장 신들의 노여움을 산다며 주의를 주고, ‘넋 드리러’ 갔을 것이다.

그런데 근래 제주가 교통 문화에서 오명을 쓰고 있음은 왜일까. 최근 비트코인 열풍과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서, 투자를 잘못해 망하는 사람의 심리와 부주의해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의 심리가 요행을 바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overconfidence)이다. 대부분 투자자들은 자신이 몇 번 성공하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다. 이후 더 큰 금액을 위험 대비 없이 투자한다.

교통사고도 그렇다. 자신은 운동 신경과 운전 실력이 뛰어나다며, 자신의 능력으로 사고를 피한 일들을 영웅담처럼 얘기한다. 그리고 점점 스릴을 즐긴다. 안전띠를 안 매는 이유를 그래야 사고에 빨리 대응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상식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둘째, 투자 실패 성향 중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있다. 자신이 믿는 이론이나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찾는 성향이다. 투자 결과가 좋으면 스스로 똑똑해서 라고 생각하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세력이 개입했다는 등 다른 이유를 찾아 자신을 합리화한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교통 상식과 운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타인이 잘못했다는 증거를 찾기 바쁘다. 사고가 발생하면, 특별히 자신이 잘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잘했다고 주장하게 마련이다.

셋째, 군거 본능(herd instinct)이다. 호재로 주식이 오르면 너도나도 덤벼들어 고점에도 매수한다. 군중심리에 따르는 충동과 본능이다. 앞뒤 옆 차들이 빨리 달리면 자신도 모르게 그 대열에 합세한다. 흐름에 따라야 한다고 합리화하면서.

교통사고는 한순간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투자보다 훨씬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과거를 다 미신으로 치부하는 마당에 옛날의 경건함과 생활 방식을 오늘날에도 간직하자고 하기도 어렵다.

이제 과학적인 설명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할 것이다. 안전띠를 매지 않을 때 운전자의 사망 위험은 12배나 된다. 안전띠를 안 매고 차 밖으로 튕겨 나가면 지나가던 차량이나 2차 사고에 의해 사망과 중상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한편 안전띠를 맸기 때문에 입게 될 자체 부상의 위험은 거의 없다.

물속에 빠지거나 불이 나더라도 안전띠를 매는 게 빠져나오는 데 더 유리하다고 과학은 말한다. 사고는 과학보다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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