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옷 적신 슬픔이 바다쪽으로 걸어갑니다
눈물로 옷 적신 슬픔이 바다쪽으로 걸어갑니다
  • 제주신보
  • 승인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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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위령공원
▲ 쉰 번째 바람난장이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에서 진행됐다. 홍진숙 作 ‘바람의 눈물-남영호’.

바다는 싸락눈을 삼키는가 내뱉는가
수평선 넘나들던
섶섬 새섬 문섬 범섬
저무는 바다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숨바꼭질 끝났다
이제 그만 나와라
경술년 그 뱃길이 황망히 놓친 세상
못 다한 마지막 말이 별빛으로 돋아난다

 

보따리장수 홀어머니 바다에 묻은 세 아이
그 눈빛 그 어깨울음 뿔뿔이 흩어진 골목
마당귀 유자 몇 알이 장대만큼 솟았는데

 

아, 어느 이름인들
눈부처가 아니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못했어도
내 아직 이승에 있을 때 이제 그만 돌아오라


-오승철의 ‘그리운 남영호’-삼백스물세 분을 호명하며 전문

 

1970년 12월 14일 그날, 제주에 이틀 전부터 내려졌던 태풍주의보가 걷혔다. 날씨는 맑았고 바다는 잔잔했다.
오후가 되자 서귀포항은 유난히 사람으로 붐볐다.
서귀포와 부산 간 정기여객선 남영호에는 밀감 상자가 계속해서 실려지고 사람들은 선표를 구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돌아다녔다.
표는 이미 매진.
배에 밀감을 실어놓고 화물만 가게 할 순 없다고 하도 눈물바람을 해서 출장 가던 친척이 딱한 김에 표를 내주고 자기는 제주시로 가서 배를 타고 간 경우도 있었다.

 

5시, 남영호는 서귀포항을 출발, 성산포항에 기항하여 다시 밀감 상자들을 싣고 승객을 90여 명 태웠다.
화물은 적재 허용량을 4배 이상 초과했다.
승객 중에는 명단에 없는 사람도 있었다.
성산포를 떠날 때 이미 배는 좌현 쪽으로 10도 정도 기울어 있었다.
겨울 황혼 녘 점점 짙어져가는 어둠 속으로 떠난 남영호는 15일 밤 1시 30분, 전남 거문도 근해에서 침몰했다.
구조된 사람은 12명, 희생자는 323명이었다. 우리나라 최대의 해상 조난 사고였다.

 

▲ 박연술 무용가가 하얀 명주 수건을 받쳐들고 살풀이춤을 추고 있다.

여기는 서귀포시 정방폭포 주차장 인근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이 있는 곳.
47년 전에 일어난 남영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해난사고가 많았던 제주에는 ‘조상을 물에 눅진다(눕힌다)’는 말이 있다.
바다에 고기잡이 가서, 또는 물질을 하다가 물에서 실종돼 그 시신이나마 찾지 못했을 때, 그 한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영호의 희생자들도 거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동지섣달 차디찬 바닷물에 조상을 눕힌 설움, 가슴에 박힌 얼음덩어리 되었다.    

 

위령제는 분향과 묵념…, 이어서 바람난장으로 이어졌다.
아버지를 저 바다에 눅진 춤꾼 박연술이 하얀 명주 수건을 받쳐 들고 살풀이춤을 춘다.
어허허허~, 은숙의 허스키한 저음이 얼음덩어리 박힌 유족들 가슴으로 파고든다.
저승과 이승, 산자와 죽은 자를 다리 놓는 저 명주 수건이 흐느낀다.
영령(英靈)의 언어로 들럭퀸다.
맺힌 것은 풀리고 풀린 것은 맺으소서.
얼음은 뜨거운 눈물로 차오른다.

 

이경숙 시인이 정호승의 ‘이별노래’를 낭송한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오늘은 춤도 소리도 시도 모두 묵직한 저음(低音)이다.
슬픔은 땅에 끌리며 저 멀리 보이는 푸르디푸른 바다로 내려간다.
이어서 강경아가 오승철의 ‘그리운 남영호’를 낭송한다.
위령탑에 새겨져 있는 위령시(慰靈詩)이다.
마지막 구절 ‘내 아직 이승에 있을 때 이제 그만 돌아오라’를 들은 어느 할머니가 흐흑, 엎어지며 눈물을 훔친다.

 

 

▲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에서 진행된 바람난장에 참여한 난장가족 모습.

나종원이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스페인 민요 ‘고향생각(Flee As The Bird To Your Mountain)’을 연주한다.
이 곡의 우리말 번안 가사는 남영호 영령들이 유족들에게 보내는 답장 그대로이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 한번 떠나온 후에/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내 맘속에 사무쳐/ 자나 깨나 너의 생각 잊을 수가 없구나/ 나 언제나 사랑하는 내 고향 다시 갈까.        
숙연한 분위기와는 달리 오늘의 날씨는 포근하고 화사했다.
삼백스물세 분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탑의 모습이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하얗다.
이런 날 이런 마음에게로 미당 서정주의 시구,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가 살그머니 다가와 손을 잡는다.  


글=김순이
그림= 홍진숙
사진= 허영숙
연주= 나종원
춤=박연술
소리=은숙
시낭송=이경숙 강경아

 

※다음 바람난장은 23일 오후 5시 서귀포시 토평로 50번길 9-14 석화갤러리에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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