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산방산 돌을 벗 삼아온 세월…“좋은 돌은 파란빛이 난다” 
(62)산방산 돌을 벗 삼아온 세월…“좋은 돌은 파란빛이 난다” 
  • 제주신보
  • 승인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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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조 어모장군 조방좌의 11세손
父 조응권, 돌 캐고 비석 만드는 장인
전역 후 돈벌이 되는 비석 제작 힘써
▲ 조이전 석장이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산방산의 서쪽 능선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 석장은 이곳의 돌과 함께 세월을 보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가라는 생각 때문에 여러 가지 일 중 하나의 일을 선택한다. 일의 선택에 있어서도 기회가 있기 마련인데 대를 잇는 경우, 그리고 새로운 일이지만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일은 사회의 변화 과정과 매우 밀접하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그것에 인력이 몰리는 경우다.
  

상·장례의 변화를 보면 우리 사회 변동의 흐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상·장례는 그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지표가 되었지만 600년이 흐른 지금 세대가 바뀌면서 상·장례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직장 때문이라도 누가 3년 가까이 부모 상(喪)을 치를 수 있을 것이며, 3일장(葬)을 넘기거나 매장하는 집안도 이제는 드물고 제사마저 합제를 지내는 곳도 비일비재하다.

 

문화는 효용성에서 시작되고, 실용성에서 변화된다. 문화의 흥패는 기원, 기념 등 자발성에서부터 이념, 제도에 있어서도 한 사회에 이익이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이르러 확산된다. 우리에게 전승되는 문화 또한 이 과정을 지나온 문화들이다.

 

한때 비석의 대명사였던 산방산의 돌도 이제는 우리의 기억에만 남게 되는 문화적인 돌이 되었다. 제주 들녘의 무덤에 세워졌을 산방산 돌들은 제도, 경제적으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석이나 중국산 화강석에 밀려 사라졌다. 웅장한 산방산의 위용 아래 자연석을 캐기 위해 울렸을 정(釘) 소리와 해머 소리. 조면암을 편편하게 가공하는 솥뚜껑 미는 소리가  아련한 추억의 소리가 된 지금, 산방산 사방으로 겨울 해풍만 연례 행사마냥 한 바퀴 울다 간다.

 

 ▲세월이 만든 장인
훤칠한 키에 과묵한 얼굴, 금방 봐도 단단하고 억센 손을 가진 조이전(趙利傳·82세) 석장(石匠)은 1936년 5월 29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서 태어났다. 주민등록상 나이는 1937년 12월 16일로 돼 있다.


조이전의 본관은 한양 조씨로 입도조 어모장군(禦侮將軍) 조방좌(趙邦佐)의 11세손이다.


입도조 조방좌는 형 조방보(趙邦輔)와 함께 조광조(趙光祖)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제주에 낙향했다. 


조이전의 아버지는 조응권(趙應權)은 1889년생으로 일찍부터 돌을 캐고 비석 만드는 일을 하던 장인으로, 85세까지 살았는데 조이전은 형인 조순전(趙淳傳·1927년생)과 함께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자 같은 일을 했다.


조이전은 부인 송옥생(宋玉生·1937년생)과의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 조근배(趙斤培·55세)는 현재 대정읍 안성리 이장으로 마을 일을 돕고 있다.  


조이전의 아버지는 비석 만드는 일을 67세 정도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고령에 드는 나이였다.


조이전도 비석 일을 시작한 것은 1962년에 군대 갔다 온 뒤부터였다.


당시 실정으로 볼 때 비석 제작이 농사 일보다 돈벌이가 좋았고 농사하면서도 부업으로 비석 제작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도부터는 주문만 들어오면 농사일을 뒤로 미루면서라도 비석 제작에 힘썼다.


 

▲ 비석돌을 갈 때 사용하는 무쇠 솥뚜껑. <사진 제공=이정남>

▲좋은 돌은 파란빛이 난다
아버지가 연세가 많아서 일을 배운 것은 잠시였다. 비석 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산방산에 가서 돌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현장학습인 셈이다. 돌에 익숙해지면 돌 바깥만 봐도 그 돌이 강한 것인지 약한 것인지 알게 되는 것이 경험의 힘이다.


장인은 손과 머리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산방석(돌)은 아무리 커도 ‘절(결)’따라 징을 박고 치면 벌러 지지(자르지) 않는 돌이 없습니다. ‘모’로는 잘 깨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에 원리가 있다, 일에는 이치와 순서가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결을 따라서 잘라놓고 나서 나중에 필요한 크기대로 잘라서 쓴다.


그러나 조이전이 강조하는 좋은 돌은 ‘결로 잘 나가고 모가 잘 안 나가기 때문에 결과 모가 비슷하게 섞인 것이 좋은 돌이라고 한다. “좋은 돌은 자르면 파란빛이 난다”고 했다.


박힌 돌을 자르려고 돌을 칠 때 징 양쪽에 얇은 양철을 끼운다.


돌 크기에 따라 징 큰 것을 박거나 작은 것을 박는다. 큰 것은 징을 12개 박는다.


땅에 박힌 돌의 크기나 질도 겉으로 봐서 예측할 수 있다. 돌의 귀를 조금만 쳐서 쪼개보면 어떤 돌인지 안다는 것이다.


땅에 박힌 돌이 단단하지만 노출된 돌도 쓰는 데 이미 노출된 돌은 옛날부터 비석하는 사람들이 거의 사용해버렸기 때문에 땅에 박힌 돌을 찾아 쓴다.


비석 일을 하려면 돌 고르기에서부터 다듬는 것까지 배운다.


조이전의 비석 만드는 순서는 ①돌을 고른 후에 징을 대고 결대로 자른다. ②다시 모로 자른다. ③겐노로 다듬는다. ④가장자리 네 귀를 돌아가면서 징으로 깎는다. ⑤가운데는 곰보망치로 다듬는다. ⑥무쇠 솥뚜껑(덕수리 産)으로 민다. 중심을 손에 잡고, 그냥 하면 배가 아플 수 있으니까 수건 같은 것을 대고 배 힘으로 밀어낸다.


비석을 미는 것만 전담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한 개 미는 데 얼마의 돈을 준다.


주로 남자인데 여자도 한 사람 있었다.


▲산방산이 직장
비석 일 초창기에는 산방산 북쪽의 능선으로 출 ·퇴근하며 거의 다 만들다가 나중에는 돌을 집에 운반해 왔는데 운반할 때 가장 힘든 일은 산 위에서 산 밑의 마차 있는 곳까지 경사진 곳을 운반하는 일이었다.


그때는 소나무 가지가 한 쪽만 붙어 있는 것(새총처럼 생긴 모양) 위에 돌을 올려놓고 날랐다.


사람 손으로 직접 날라야 하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들었다.

 

조이전은 비석을 주로 만들고 동자석과 갓석(기와지붕 모양)은 요구가 있을 때만 만들어 주었다.


갓석은 보통 비석을 세우고 나서 10년 후쯤 해서 만들어 달라고 한다.


아마도 비용 때문인 것 같다. 조이전의 아버지도 갓석과 동자석을 만들긴 했지만 그리 많이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동자석은 집안이 넉넉한 사람들이 만들었다. 주문자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지만 요구 사항이 거의 없다.


조이전이 동자석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을 때 주문이 들어오면 동자석 있는 무덤을 돌아다니며 견본을 봐두었다가 나름대로 생각해서 만들어 준다.


동자석은 별 어려움 없이 만들었다. 돌 다듬는 기술만 있으면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자석 손에는 주문자가 특별한 요구가 없을 때 보통 홀(笏)을 들게 한다.


동자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자석의 크기가 정해지면 돌을 사각형으로 자르고, 자기대로 먹줄로 그림을 그려서 만든다.


1개 만드는 데 2~3일 걸린다. 동자석(쌍)은 비석 값(3자짜리)보다 2배 정도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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