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으며
연필을 깎으며
  • 제주신보
  • 승인 20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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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혜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세상 ‘키움학교’ 대표

“왜 여긴 연필깎이가 없어요?”
“선생님 연필 깎는 모습이 신기해요. 어떻게 깎는 거예요?”
“그렇게 깎으니까 연필심이 두꺼워서 불편해요. 더 가늘게 깎아주세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깎아주면서 한 마디 더 한다.


“옛날엔 이렇게 가늘게 깎아버리면 연필을 오래 못쓴다고 해서 일부러 두껍게 쓰기도 했어.”


하지만 아이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연필 한 자루 쯤 없어져도, 아니 없어진 줄도 모르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에게 연필심을 가늘게 깎으면 쉬 닳는다는 말은 전혀 실감나지 않을 일이다. 그저 웃을 수 밖에….


나는 연필을 손으로 깎아주는 선생님이 되고싶다. 연필을 구멍에 끼우고 돌리기만 하면 아주 동그랗고 정연하게 깎아지는 연필깎이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요즘은 그런 수동 연필깎이 말고 연필을 넣기만 하면 알아서 깎아주는 전동 연필깎이까지 있는 세상에 어찌 그런 구닥다리같은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겠지만 나는 그러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쓸 연필에 온기를 주고싶었다. 내가 깎아놓은 연필을 아이들이 손가락에 끼우고 꼭꼭 눌러 글자 하나하나 써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찌 그리 신기한지, 어디서 그런 생각들이 속속 베어져 나오는지 감동스럽기 그지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나만의 주문이다. 내가 깎은 연필로 글을 지으면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생각, 더 멋진 표현, 생각이 쑥쑥 뻗어나가 주었으면 하는 기원을 하며 하나하나 연필을 깎는다. 사각사각 연필심을 깎는 소리가 마치 ‘이렇게 써주세요’라고 나에게 주문을 거는 것 같다.


연필을 깎고 있으면 오래 전, 책상에서 우리가 쓸 연필을 깎아주시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선생님도 나처럼 이런 마음으로 우리들에게 연필을 깎아주셨겠지. 그때는 선생님의 그 따뜻한 마음을 미처 모르고 받아 쓰기에만 바빴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선생님 사랑이 가득 베인 연필로 쓸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자동화되고 속도화 되고 있는 세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은 어느새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어른이 될 것이다. 경쟁 속에 부대끼다 어느 날 연필을 깎게 될 때, 아주 오래 전 어느 선생님이 손으로 정성껏 깎아주던 연필을 떠올리면, 지금 내가 오래 전 나의 담임 선생님을 떠올리듯 한 순간 마음이 따스해질 것이다.

 

그때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 나는 또 연필을 깎는다. 그러면 연필이 사각사각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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