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풍경이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과 뉴질랜드는 특히 대조적이다. 한국은 명절 때 아이들처럼 들떠있다. 직장과 친구, 가족 모임 등으로 너나없이 바쁘다. 주로 밖으로 돌아다닌다. 그래서 거리가 북적이고 음식점은 손님들로 만원이다.

이에 비하면 뉴질랜드는 가정적이고 차분하다. 거리는 한산하고 가게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시기부터 새해 1월 중순까지는 휴가 분위기다. 실제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가족 중심이다. 가족 우선주의를 뜻하는 패밀리 퍼스트(Family First)가 생활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패밀리 퍼스트라는 말은 자칫 내 가족만 챙기겠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본질은 가족과 집안이 건강해야 사회와 나라가 건강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이런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단체도 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세포 하나하나가 건강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이론과 같은 것이다.

한국에도 나와 가정의 중요성을 일컫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교의 가르침이 있다. 한국인들의 정신세계 속에 깊숙이 녹아 있다. 자기 수양의 중요성을 일컫는 말로 사회와 나라를 다스리려면 자기 수양과 집안 관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수신제가보다는 치국평천하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가족관계보다는 대외적인 활동에 더 방점을 둔다는 말이다. 남자들의 경우 그런 현상이 더 강하다. 그래서 연말연시도 밖으로 쏘다녀야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지 모른다. 남자가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가족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일도 없지 않다.

이런 경향은 생활 여건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사회 활동이 집안일보다 중요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직장 일이나 대외 활동에 몰두하면서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해도 그걸 당연시한다면 그건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고위 공직자가 공무를 이유로 자녀 결혼식에 불참하거나 휴가를 반납하는 것도 그다지 칭찬할 만한 일은 못된다.

이유는 가족 관계를 소홀히 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파괴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 분란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사회에 큰 해악을 미칠 수도 있다. 일부 전직 대통령들의 사례만 보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뒤늦게 수신제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돈 많은 재벌들,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총리 중 한명이었던 존 키 전 총리는 지난 2016년 말 총리직에서 돌연 사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유를 부인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안일 때문에 나랏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국가에 대한 봉사 정신이나 책임감이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가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권력욕을 자제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패밀리 퍼스트 정신은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뉴질랜드인들은 대부분 서양 사람들이 그렇듯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한 잔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좀처럼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지나면 거리가 썰물 빠지듯 한산해진다. 밤 9시만 되면 벌써 한밤중이다.

한국에서도 한 때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나라와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나와 가정부터 잘 추슬러야 한다는 패밀리 퍼스트 정신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생활화하는 게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