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MC 송해 선생이 이태 전에 평전을 냈다. ‘나는 딴따라다’ 제목이 이색적이다. 이 책에 그의 건강관리법이 나온다. BMW(bus, metro, walking)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걷고, 그가 터놓고 말하는 건강비결이다. 걷기가 건강의 바로미터인 걸 알면서도 선 듯 나서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냥 나서면 된다. 작은 배낭에 물병 하나 챙기면 좋을 것이다. 딱히 목표를 정하거나 시간에 얽매일 이유도 없다. 나이나 건강을 가늠하는 건 번거롭다. 사유나 성찰에 집착하는 것도 자칫 자기연민에 빠져들기 쉽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뒷동산에 오르면서 상념에 젖어들면 외려 걸음이 무거워진다.

걷는데 체면 차리고 위상 따위를 따질 게 아니다. 걷다가 헬스클럽에서 땀 흘리고 나오는 친구를 만나거들랑 ‘씩’ 웃어주면 될 것이다. 이왕 시작한 걷기인데 오름도 오르고, 한라산 등산에도 도전해 볼 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걷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걷기는 발전한다했다. 내 동갑내기 친구는 이태 전, 일흔이 넘는 나이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코스를 걸었다. 그 때 같이 못 갔던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걷는 것은 생명유지능력의 마지막 기능이다.> <다리가 무너지면 건강이 무너진다.> <걷지 않으면 삶을 잃어버린다.> 어느 저술가의 걷기 예찬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걷는 매 순간마다 내가 내 발로 걷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나이 들었다고 노인티를 내는 것도 걷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걷는데 근엄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자조나 푸념은 금물이다. 지난 세월에 천착하고 걸으면 피로가 덧씌워진다. 굳이 친구를 부르고 동행을 찾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혼자 걷는데 길들여지는 건 걷기의 기본이다. 가능하면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는 습관에서도 탈피하는 게 좋다.

걷는다는 것은 나만의 행위다. 도심의 보도를 걷거나 호젓한 오솔길을 걸을 수도 있다. 걷기의 좌표는 걸으면서 설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름에 오르는 게 버겁거들랑 마른 억새가 서걱대는 들녘을 걸으면 된다. 황량한 들판을 걸으면서 겨울 정취에 취해보는 것도 한 조각 낭만일 테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문명의 이기를 수없이 누리며 살아간다. 자가용은 편리하지만 걷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걷기에 나서면 속도의 개념은 잊어야 한다. 걷는 시간과 장소는 늘 걷는 자를 중심으로 펼쳐지게 마련이다. 걸으면서 어제를 반추하고 오늘을 추스르는 건, 내일의 삶을 에두르는 것이다. 먹는 습관 보다 걷는 습관에 길들이면 삶에 활력소가 솟구친다.

나는 한 해에 두 번 섬과 결별한다. 한 번에 열흘 쯤 국내 여행길에 나서는 거다. 꽃이 필 때면 화사하게 만개한 꽃길을 걸었고, 낙엽이 질 때는 마른 잎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낯선 숲길도 걸었다. 눈 덮인 대둔산에 올랐던 기억도 아련하다.

그래서 훌쩍 밤배를 타고 섬을 떠난다. 시간과 돈과 건강이 여행의 삼요소라는 말들을 하지만 나는 이 셋을 다 갖추지 못한 체 그냥 나서는 게 아닐까싶다. 조금씩 모자라면 어떠랴. 내 발로 걸어 다니는 여행인 것을…, 걷다가 힘에 부치면 발길을 돌리면 될 것이다.

벼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룬 호남평야, 푸른 물결의 감도는 한려수도, 영암 월출산, 다시 걷고 오르고 싶은 곳들이다. 갈매기의 고향 강화 석모도, 개성공단이 보이는 파주 감악산, 애기단풍이 작은 이파리를 하염없이 떨어뜨리는 지리산 피아골, 섬진강으로 흐르는 샛강의 물소리, 지난 한해에 내가 걸었던 기억의 편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