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 선생을 시성(詩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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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는 청록파 조지훈과 미당 서정주에 의해서 60여년 전 시단에 등장한 한국시문학의 거목 고은(高銀)선생의 ‘그 꽃’이라는 짤막한 시이다. 그는 현재 85세의 만만치 않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부르는 곳이면 어디에나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그 특유의 몸짓과 표정, 온 몸에서 솟구쳐 오르는 절절한 음성으로 절규하듯이 대중을 사로잡는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일제와 6·25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와 같은 파란만장한 어둠의 시절을 몸소 부딪치고 겪으면서 살아온 연륜과 역경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말한다. “만 19세 어린 나이에 한 때는 입산출가를 하여 요요적적한 곳에서 수도자의 꿈을 품고 조용히 살기도 했지만 일제 암흑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용케도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끊임없는 죽음과 공포라는 트리우마를 벗어난 적이 없다. 수없이 보아온 동족간의 보복 학살을 목격하였으며 바이러스와 같은 죽음이 항상 가슴을 짓눌러 와서 비겁하리만큼 지극히 소극적인 삶을 살아왔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생존만을 생각하면서 비굴하게 살았다. 그래서 나의 시 주제는 대부분 애도(哀悼)를 상징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신하여 죽어갔다는 이런 아픔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내 양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얼마나 진솔하고 기막힌 양심고백인가.

자고로 진실은 사실을 토대로 하여 사람을 이롭게 하지만 거짓은 허위를 근간으로 하여 사람을 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망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고은 선생과 같은 양심들이 그립다. 따라서 영화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나 이한열 열사와 같은 그런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몫을 감당하는 청계천 ‘밥퍼 C목사’나 이번에 목숨을 걸고 탈북한 귀순용사의 생명을 구한 ‘이국종 교수’와 같은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적어도 비난 대신 박수와 격려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은 선생은 우리 귓전을 향해 외친다. “삶은 본시 상처예요. 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 인생이지요. 상처를 잘 치유하면 행복 아니겠어요?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요. 나의 존엄성을 모독하고 구속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어요. 나는 태초의 빅뱅,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고 술은 입으로 들어오죠? 눈은 최고의 예술이에요. 밥도 연애하듯이 45번을 씹으면 맛있고, 술도 연애하듯이 60번을 씹으면 사랑이 됩니다. 책은 매혹적인 여자이고 남자예요. 책을 멀리하지 마세요. 세월호 참사, 이는 이 시대 우리의 삶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거예요. 무책임하고,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갈등, 이기주의, 독선주의와 같은 사회적 독소들이 결국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거지요.”

진정한 시인은 그 삶이 시이어야 한다. 그래서 장 콕토(Jean Cocteau)는 “나는 시(詩)다”라고 말했나 보다.

중국의 이백(李白)을 시선(詩仙)이라 하고 두보(杜甫)를 시성(詩聖)이라 부른다. 인도에도 타고르라는 시성이 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는 왜 그런 이름이 아직 없을까? 그것은 우리 탓이다. 영웅호걸도 난세(亂世)에 출현한다고 하지 않든가! 요즘처럼 다사다난한 악세일수록 우리가 스스로 시성(詩聖)도 시선(詩仙)도 영웅호걸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그는 계속 시를 낳고 우리는 그를 시성(詩聖)으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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