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세상을 눈뜨게 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눈뜨게 한다
  • 제주신보
  • 승인 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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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명상가
우리가 약해졌을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종교이다. 간절함이 하늘 문을 두드려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도 하지만 위험한 호기심이 될 수도 있다. 남에게 들은 지식은 때로 성장에 방해가 될 뿐 무조건적인 믿음과 넓게 보지 못한다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을 때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눈물까지 흘리며 그때의 감동을 전하는 모습은 부럽기보단 안타까웠다. 이제 한계에 부딪히면 의심과 불신을 만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내자. 어두운 곳에서 희망을 전하며 꾸미지 않은 원천에 뜻을 두어야 한다. 예수나 석가가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자는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글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스승을 넘어서는 깨우침을 가지고 창조도 이미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족으로 비워내야 한다. 하나를 잡으려는 욕심은 둘을 잃으며 아래를 볼 줄 모르는 자만과 부끄러움만 남긴다.

평소 술과 고기를 즐기는 스님이 자신은 모든 것을 알았고 성찰의 경지까지 이를 만큼 커져 정해진 규칙에서 자유를 찾았다는 자랑을 늘어놓고 이야기 중간에 부처님 말씀을 자주 인용하면서 가르침을 주려고 한다. 버려야 새로움이 채워진다는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신을 모신다는 무속인들도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면, 좋다는 산이 있어 영험함을 빌리러 간다고 한다. 답답한 무지함이다. 이들은 누구나 최고라는 이기심으로 화합을 싫어하며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가서 받지 말고 집으로 가져오라고, 별에 기운이 있다면 그곳까지 갈수 있냐고 마음에 있는 것을 두고 먼 걸음을 가는 수고를 아끼라는 조언을 하지만 매번 쇠귀에 경 읽기다. 집착은 자신에 올가미를 씌우며 새로운 세상에 도달하지 못 한다.

거리에서 선교를 하는 이들이 있다.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고 꺾이지 않는 고집과 주장으로 일관성을 보여 낸다.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고 한다. 틀린 방법이 아니다. 다만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두렵다고 뛰려는 시도조차 못한다면 언제나 그곳이다. 강하지 않은 약자가 되어야 하며 미운 것과 화해에 나서보자. 교회나 절에서 답을 구할 수 없으며 아름다운 내면을 간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