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풍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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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 수필가

무술년으로 넘어서는 건 찰나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새롭게 한 해를 펼쳐 주신 신께 감사드리고, 해맞이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물리적 시간은 째깍째깍 한결같이 흘러간다. 그러나 심리적 시간은 각자의 마음에 따른다. 마술처럼 빠르거나 느리게 흐르다가, 때로는 정지하는가 하면 과거로 역류하기도 하고 미래로 성큼성큼 건너뛰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저 나름으로 사용한다.

새해 해돋이를 맞기 위해 나서기는 처음이다. 다섯 시 반쯤에 가까운 원당봉을 향해 차를 몬다. 기슭에 주차하고 홀로 친숙한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새벽이 낯선 곳으로 인도하는 듯 옷깃을 여미게 한다. 몇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힘차다.

가로등 불빛의 안내를 받으며 문강사 왼편 길로 올라가노라니 원당봉 정상 못 미친 곳에 예닐곱 사람들이 모여 자리를 고르고 있다. 얼마의 다과와 술병을 준비한 것으로 보아 고사를 지내려는 모양이다. 동살을 맞아 일 년 동안 행운과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정성일 테다.

이른 시각 탓인지 정상에는 십여 명이 명상에 잠겨 있고 몇몇은 운동을 위해 능선 길을 빠르게 스쳐 지난다. 둥근 해를 보려면 한 시간 반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옷을 따습게 껴입었는데도 어떻게 냉기가 스미는지 아랫다리와 어깻죽지가 시려 온다. 새천년 시비(詩碑)를 바람막이로 동편 하늘을 향해 선다. 해돋이 명소인 일출봉으로 향하는지 동쪽으로 나아가는 차량 행렬이 아득하다.

잠시 눈을 감고 새해의 소망을 펼친다. 요양원에 계신 노모로부터 멀리 떨어진 손주들에 이르기까지 얼굴을 떠올리며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평화가 함께하길 빌고, 사회의 화합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합장한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무위 무욕의 길로 들어서는데 나의 욕심은 풍선처럼 팽창한다. 훗날 이승에서의 생을 소명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느끼려 애썼노라는 말을 준비하려 한다. 들여다볼수록 자연은 경이롭다. 우주의 별빛, 들녘의 꽃향기, 흐르는 물과 바람의 수런거림…. 풀잎 속에도 신의 숨결이 담겨 있음에랴.

이것뿐인가. 사람들의 아름다운 영혼 앞에서도 정좌한다. 일전에는 열다섯 줄 유언으로 어미의 마음을 전한 글을 읽으며 눈가를 훔쳤다. 이런 대목이 있다.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

책을 읽거나 신문이나 인터넷을 뒤지다가 가슴 뭉클한 글을 대하면 공책에 적어 놓는다. 내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려 함이다. 올해도 공책 한 권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 그리고 혼족들이 200명은 될 듯하다. 대부분 동편으로 시선을 꽂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분위기는 침묵의 소망으로 넘친다. 간절한 기도는 이루어진다는데, 작심삼일을 건너 습관화된 행동으로 결실을 맺으면 좋겠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는데도 태양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먼 산등성이에 산불이 번지듯 구름 가장자리가 붉게 물든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인간의 축복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녹인다. 생의 마지막처럼 겸손하고 진지하게 일상을 열어야겠다.

부디 보석 같은 새해를 따뜻하게 포옹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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