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서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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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글과 말이 넘쳐난다. 예전엔 문맹도 있었고, 사회적 환경이 입단속으로 이어지곤 했지만 이젠 아니다. 고학력에 말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사회로의 진화는 말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현란한 수사의 글과 역동적인 제스처로 거침없이 쏟아 내는 말이 봇물을 이룬다. 문자의 과잉, 언어의 범람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넘치는 게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삼가서 좋은 말을 문자로 올려 논란이 일게 한다거나, 공연한 말로 서로 간의 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가 적잖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절제하지 않았다 후폭풍을 몰고 오는 상황에 낭패를 사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무엇을 고치라고 권하기 일쑤다. “부자 되십시오”라거나 “건강하십시오” 하는 식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오죽 좋으랴만 어디 쉬운가.

까딱하다 저는 부자고 건강하니 자기처럼 그렇게 되라고 강권(?)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 말로 건네지 않아도 부자와 건강은 만인이 갈구하는 가치로 지극히 보편적인 지향점이다. 덕담으로 하는 좋은 말에 부정적 토를 단다 할지 모르나, 듣는 이에 따라서는 성의 없다 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의미다.

충고를 전제해 하는 말도 다양하다. “우울해 하지 마”라는 말은 막상 우울한 사람으로서 가장 절망하는 말 중의 하나라 한다. 물론 위로하려는 의중이 담겼겠지만, 상대방의 처지를 짚어 내지 못하는 말이 되는 수가 있다. 듣는 입장에 서지 않고 하는 말처럼 무의미한 것도 없다. 막상 얘기해 놓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우울하고 싶어서 우울할 사람이 어디 있냐고,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는 말이다.

“불안해하지 마”도 그런 부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게 될 테니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들이 도움은커녕 오히려 답답함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말 중에 “다 내려놓아” 또는 “마음을 비워”가 있단다. 힐링과 명상 열풍으로 마음을 내려놓는 게 정신건강에 더없이 좋다는 것쯤 모르지 않는다. 좋은 말들이다. 한데 문제는 감정 조율이 잘 안돼 모처럼 털어놓은 것인데, 마음을 비우라니. 더 조바심 날 뿐이라는 것이다. 말이란 역지사지로 처지를 바꿔 하지 않으면 상대의 비위를 건드리거나 파문을 일으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말을 허투루 해선 안됨을 통감케 된다.

가장 삼가서 좋은 말로 “용서해”를 든다. 용서가 어때서? 반문할지도 모르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삼자도 아닌 가해자가 은근히 용서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간 외도해 온 남편과 그 남편 쪽에 섰던 시어머니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에게, 단지 시어머니가 병들어 누워 있다는 이유로 “이제 그만 용서해”라니. 모든 걸 싹 다 잊으라는 강제의 말 아닌가. 더욱이 당연한 것처럼 명령조로 하는 그 말이 살촉으로 가슴에 꽂힐 것이다. 듣는 사람으로서 상처 받을 것은 당연하다.

삼가서 좋은 말을 의당 해야 되는 말로 착각하는 수가 흔하다.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말의 속성과 묘리(妙理)를 꿰찬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한마디 말이야말로 꼭 해야 할 때를 깨달음에서 나온 것으로 새겨들을 일이다. 좋은 말이라고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감정만 덧나게 한다. 말은 삼가야 빛난다. 진정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차라리 가만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내명한 현자(賢者)의 길일 것이다.

침묵은 때로 의중을 함축하는 고도의 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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