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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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수필가

손자(孫子)가 왔다.
청천벽력(靑天霹靂)의 울림으로, 서설(瑞雪)처럼 내게로 왔다.
정현종이 ‘방문객’이란 시에서, 내 마음의 정곡을 콕 찔렀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 어마어마한 일이다’. 손자의 탄생으로, 무료하고 팍팍했을 초로(初老)의 심전(心田)에, 눈부신 감동이 소복하게 쌓였다.


손자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들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며, 귀국선물처럼 품에 안겨 주었다.
영문과 한글 출생 신고서에는, 각각 요셉과 수현이라는 두 개의 이름이 또렷하다.


구상유취(口尙乳臭)인 영아(嬰兒)의 얼굴과 겹쳐오는, 두 개의 이름들을 떨리는 손으로 어루만지며, 손자가 참 고마운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실 좋은 아들 부부에게 도착한 최고의 선물이요, 양가(兩家)의 빛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손자를 처음으로 안았을 때, 온몸을 관통하던 혈연(血緣)의 뜨거움에 전율했다.


아들과 며느리의 몸에서 손자에게로 연면히 흘러들었을 유전 인자들을 꼼꼼히 살피며, 새 가족의 탄생을 온몸으로 절감했다. 


손자의 앞날에, 가족의 사랑이 항상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조상님들께서도 음덕으로 보위해주시기를 경건히 기원했다.


그렇지만, 요즘 손자가 건너는 영아기의 강(江)은 녹록하지 않아 안타깝다.


인구절벽의 위기 속에 출산을 독려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아닌 것을 실감한다. 대부분의 부모와 어린 아이들이, 양육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내외도 일과 시간에 쫒겨, 손자를 사랑으로 토닥여 줄 시간과 여유가 많지 않다. 그리하여 부모의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손자와, 돌도 안 지난 어린 것이 눈에 밟혀 일손이 잡히지 않을 아들 내외의 하루 하루는, 처연하고 안쓰럽다.


다행히 사부인께서, 손자를 보살펴 주시는데, 얼마나 수고하시는지 모르겠다.
처지가 된다면, 육아의 부담을 나누어 덜어드릴 수도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속수무책의 송구스러움에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런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자의 폭풍성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日就月長)이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귀국했는데, 어느새 집 안 곳곳을 기어 다니며 세간을 헤집어 놓는다. 게다가 불안한 걸음마 때문에 자주 넘어져, 안전모를 쓰고 다닌다. 옹알이로 하지만, 매사에 자신의 호불호(好不好)를 분명히 밝힌다.


요즘 손자 덕에, 노년의 즐거움이 하나 생겼다.
손자와 영상통화를 하거나, 비장했던 동영상들을 수시로 꺼내 보는 일이다.


‘그림의 떡’이라서 만질 수도 없고, 맛있는 것 그 입에 넣어줄 수도 없지만, 손자의 재롱과 옹알이에 하루 해가 짧다.


‘두불 자손이 더 아깝다’는 옛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설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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