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지휘부 겨누는 경찰…"죽을 힘 다해도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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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참사 첫 신고후 2층 진입까지 40분 '초동 대처' 정조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 검토…소방대 "자괴감 든다" 푸념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부실 대응 논란에 대한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화재 건물 소유주와 관리인 구속이 마무리되면서 칼날이 화재 진화 및 인명 구조 늑장대처 의혹을 받는 소방 지휘관들을 겨냥하고 있다.


경찰은 나흘 전인 지난 12일 제천소방서 소속 소방관 6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데 이어 지난 15일 충북소방본부와 제천소방서 등을 전격 압수 수색하면서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소방합동조사단 조사결과 발표 이전만 해도 경찰은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와 관련, 소방 지휘부의 판단에 대해 사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화재 현장에 전달된 정보를 무시했다거나 20명이 숨진 2층의 구조 요청을 알고도 대응을 소홀히 하는 등 현장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소방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방향을 선회했다.


소방대원들은 아니더라도 소방 현장 지휘를 잘못한 지휘관들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직무 유기 등의 혐의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이 이번 화재 참사와 관련, 유례없이 소방당국을 압수 수색하며 정조준하는 부분은 논란이 됐던 출동 후 40분간의 초동 대처다.


지난달 21일 오후 3시 53분 첫 신고 접수 이후 제천소방서 선착대가 오후 4시 현장에 도착했으나 구조대가 20명이나 숨진 2층 여성 사우나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시점은 오후 4시 33분이다.


선착대 도착 후 무려 30여분이 지난 뒤다. 구조대가 2층에 진입했을 때는 갇혔던 사람들이 모두 숨진 상태였다.


경찰이 화재 현장에 최초 출동했던 소방관 6명을 지난 12일 소환,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파악한 것도 40분간의 지휘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규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유족들은 2층 여성 사우나로 신속하게 진입해 구조에 나섰거나, 유리창을 깨 유독 가스를 외부로 빼냈다면 대형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소방 지휘부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유족들의 분석이다.


화재 발생 후 19분이 지난 오후 4시 12분 현장에 도착한 제천소방서장은 '2층에 사람이 많다'는 정보를 수차례 들었지만 오후 4시 33분에야 구조대원들에게 2층 진입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 역시 현장에 출동한 후 2층 상황을 전해 들었지만 건물 뒤쪽의 비상구를 확인하지 않았고, 발화지점인 1층 화재 진압과 건물 옆 LPG 탱크 폭발 방지에만 신경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건물 구조 파악이나 적절한 인명 구조를 진두지휘해야 할 소방 지휘관들의 판단 착오와 부적절한 지휘가 대형 참사를 막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전날 압수 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소방 지휘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됐는지와 초동 대처 실패가 대형 인명 피해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규명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이를 토대로 현장 지휘관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나 직무 유기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도 따져볼 계획이다.


경찰은 소방본부와 제천소방서 압수수색에 이어 이번 주중 제천소방서장 등 지휘관들을 줄줄이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이번 화재 참사와 관련,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신속하고 명확하게 참사 책임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초유의 청사 압수수색에 이어 소방지휘자들이 줄줄이 징계를 받고, 경찰 소환까지 앞두게 되면서 소방관들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화재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유례없이 화재 진화와 인명 구조 대응이 수사 선상에 오르는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 출동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일해 왔고, 제천 화재 때도 마찬가지였다"며 "동료들 모두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잘잘못은 엄중히 따져야겠지만 경찰이 공개적으로 압수수색하고, 벌써 사법처리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심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는데 죽을 힘을 다하고도 죄인 취급을 당하니 소방직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의욕이 떨어지고 자괴감마저 든다"고 푸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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