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이들, 귀신
남아 있는 이들, 귀신
  • 제주신보
  • 승인 2018.01.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효성.명상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알아보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생전에 가까웠던 이들의 방문이다. 한결같이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버지, 친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공포가 아닌 편안함을 주려는 배려이다. 이런 시기가 지나면 혼자 남겨질 것을 원하며 아무 일도 없다는 안도를 주려고 한다. 오랜 여행 끝에 고향에 찾아온 여유가 생기며, 설렘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이 그려진다고 한다.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은 지워지며 어둠이 없는 밝은 세계에 서있는 자신을 볼 뿐이라고 전한다. 이는 종교와 무관하며 누구에게나 차등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정해진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귀신이란 존재다. 이 또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이에 따른 대가를 알고 있지만 억울함과 분노에 사로잡혀 나쁜 선례를 남기기도 하며 인간 사회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본보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뚜렷한 목표가 있으니 함부로 흘려서는 안 될, 정상적인 범주의 이해가 필요하다.

부끄럽지 않게 꿈을 키워온 청춘이 쉽게 가려는 유혹에 걸려 철저히 이용당하다가 버려져 눈총과 냉대를 견디다 못해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 무서운 원한을 품은 채 이곳에 남아있다. 아무 감정이나 죄의식 없이 함부로 했던 말이나 가진 자의 헛된 욕망이 누군가에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냈거나 이에 협조나 방관자가 되어 연루돼 있다면 그에 따른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들은 초조함과 긴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불행에 노출되어 있다. 그 마지막도 결코 순탄할 수 없으며 설마 하는 불안감은 현실로 되어간다. 어제의 실수를 용서받아야 하며 변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

이와 반대로 가족에 대한 미련 때문에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려고 하는 착하고 여린 영혼도 있다. 이들은 뜻하지 않은 선물을 안겨주며, 작은 배려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결혼을 앞둔 자녀를 보살펴야 한다며 잠시 머무르기를 원하는 영혼이 있다. 매사 조용하며 있는 듯 없는듯 하다가 딸의 가게에 손님이 떨어지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인의 고생에는 대화조차 닫아버리는 소심한 가장이다. 자신했던 건강이 병을 불렀으나 누구 탓이 아닌 반성을 가졌다. 자랑이었던 아들이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예비사위가 성실함을 인정받아 비로소 답답했던 살림에 숨통이 트였다며 행복한 미소를 남긴 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기분 좋은 안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