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필 풍수가의 모습. 그는 큰 화상을 입은 뒤로 육지를 수없이 다니며 풍수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우리 문화에서 큰 영향을 끼친 풍수지리는 양택과 음택에 관한 신앙으로, 풍수란 땅 속에 흐르는 생기(生氣)로 인해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지리술법이다.

 

이 신앙의 바탕에는 사람의 수명은 기껏 백년이며, 육신은 분리돼 백골이 돼 땅으로 돌아가 마침내 기가 모이게 되고 이것이 자손에게 미쳐 길흉이 되기 때문에 좋은 땅을 잘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 사상은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사상을 받드는 사람을 풍수가라고 한다.


또는 감여가(堪輿家), 지사(地師), 지리가(地理家), 지관(地官)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하고 제주에서는 정시라고 부른다.

 

특히 풍수하면 음택풍수를 먼저 말하는 것으로 조상을 잘 모심으로써 자손의 번영과 발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그 목적이다. 

 

▲날래 야인 풍수가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에 풍수가 한 분이 있다. 이름은 정성필(鄭性弼), 자호는 날래 야인(野人)으로 1943년생이다.

 

날래는 일과(日果)리의 지명이다. 그가 살아온 인생은 한 마디로 인간 승리이다.

 

부인 백월선(白月仙, 1948년생)과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정성필은 풍수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공부하기 위해서 육지도 수없이 다녔고 나중에 집에서 공부했다.

 

유망한 청년이었던 그는 29세(1971년)에 큰 화상을 입고 20일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의식을 회복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내가 깨어나니까 오히려 의사들이 반가워했다. 기적에 가까웠다. 그런데 의사가 며칠간 거울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좌절감이 들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살아갈 궁리(대책)로 역학 공부를 하게 됐다.

 

역학 이외에는 내 처지가 그렇고 당시에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뭔가를 해야만 했다.

 

그 무렵 서울 다니면서 3~4번 성형수술, 정형수술 받으면서 풍수 책을 사서 몇 개월 공부를 해보니 살아가는데 괜찮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오히려 겁 없이 하나를 배워서 그것이 전부인가 싶어서 그대로 했지만, 조금 알고 나니까 책으로나 내 실력으로나 다 맞지 않았다. 맞는 것이 50~60%밖에 되지 않았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 도사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 분야를 터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성필은 1년 넘게 전국으로 도사를 찾아다녔다.

서울, 부산, 마산으로, 그리고 산 기도도 다녔다. 그러나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사들은 제자를 가르치지 않았다. 산 속에 묻혀 살아야 도사니까. 결국 도사는 산에 있기 때문에 만나지를 못했다고 했다.    

 

 

   
▲ 제주의 명당을 그린 산도.

▲금정산에서 도를 닦다


한번은 부산 금정산에서 백일기도, 산신기도를 했다고 한다.

 

“백일기도는 자기 수양, 좌선 비슷하게 한다. 대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큰 바위 밑이나 동굴에서 촛불이나 향불을 피워놓고 기도를 한다.” 주변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숙식은 주변에 보살들이 있어서 도움도 받고 스스로 해결했다.

 

백일기도를 했는데 처음 20일간은 정신집중이 안됐다. 20일이 지나니까 모든 잡념이 없어지고 무심(無心)의 상태가 됐다.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다 한번은 기도를 하는데 머리를 풀어헤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의 몸 속으로 몰려들어왔다.

 

그때 누군가가 기도를 해주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이든 지장보살이든 그런 분들을 찾다가 보면 체험이 나타난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외우니 잡귀들이 싹 물러갔다. 그때는 환희를 느꼈다. 조금은 뭔가 이루어졌나보다.” 생각했다.


부산에서 내려오면서 어느 지인에게 도사 얘기를 했더니, 마산에 가면 풍수지리로선 우리나라 제1인자이고, 사주팔자는 제2인자라는 사람이 있으니 거길 가보라고 해서했다.

 

그는 거기 가서 1년간 공부를 했다. 이름은 이세역 선생님이라고, 생사여부는 모른다고 한다. 


그는 항상 해맑게 웃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1년간 돌아다니면서 녹음도 하고 기록한 것으로 책도 쓰고 공부를 했다.

 

그 후 7~8회 성형수술, 정형수술을 더 해서 현재의 얼굴이 되었다.


“내가 죽을 형편이었는데 그럼에도 살아남게 된 것이 만약 신 또는 어떤 무엇의 힘이었다고 한다면, 내가 찾던 관세음보살이 신이었다고 한다면, 뭔가 나에게 의미 있는 생을 살게 해준 것이 아니겠는가, 뭔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있어서 살게 한 것이 아니냐’라는 자위감을 가지고 용기를 냈지만 막상 뭘 할 수 있겠느냐 라고 생각하며 공부를 하면서 하나씩 정리를 한 것이 ‘명리(命理)는 천기(天氣)다’라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이 태어날 때의 기운을 음양오행에 대입해서 인생의 미래를 예지한다고 했다.


그는 우주의 철학을 공부해보니 70~80%는 태어날 때의 우주의 기운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난 불교 계통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지장보살은 지옥, 죽음 세계를 관장하고, 관세음보살은 사회의 공덕을 베푸는 살아있는 보살이다”라고 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는 남들처럼 임기응변을 전혀 못했다. 책의 내용만, 배운 것만 가지고 말하니 인기도 없었다.


말할 자료도 없어지고, 어떤 두려움도 느껴졌다.

 

누군가가 이런 사업을 해서 성공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용기를 꺾어버린다든가, 안될 사람에게 사업을 하게 해서 안됐을 경우 그 결과는 모두 자신이 책임이라는 사실 때문에 힘들었다.

 

선거, 도박 등 다양한 사람이 찾아왔지만  말주변도 없었지만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미래를 예지하다


그의  ‘육효학의 이론과 실제’에 기록된 것 중에 신에 가깝다고 인정받은 것이 있는데 2002 월드컵 개최 때의 일이다.

 

제주시에서 교장선생님 몇 분이 부동산 관계로 찾아와서 우리나라가 4강 진출(스페인)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지금은 말할 수 없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긴다고 한다면 오후 5시 30분 이후가 된다”라고 했다.

 

당시 경기 종료시간은 5시 30분이었다.


그는 만약 연장전에 들어갔을 때 이길 것이라고 했다. 결국 연장전 페널티 킥으로 이겼다.

 

교장선생님들이 전화로 “우리나라가 이긴 것도 기적이지만, 당신의 예언도 기적이다”라고 했다.


또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이회창이 나왔을 때 정몽준이가 누가 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노무현이라고 했다. 전날 밤 11시 쯤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해도 이기겠느냐고 물으니 그래도 “노무현이 된다”라고 해 실제로 노무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송악산에서 차를 잃어버렸을 때 찾아달라는 문의가 와서 밤 11시~12시 사이에 송악산에 가보라고 했는데 들은 사람은 별 신경쓰지않아 안 갔는데, 그 사람 아들이 데이트하러 나갔다가 도둑을 봤다.

 

도둑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차만 찾으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도망가다 하우스에 차를 박고 도망간 적이 있다고 한다.


미래는 주역으로 푼다. 주역은 상괘, 하괘의 육효에 오행을 대입하고 오행에다 60갑자를 대입하는 원리다.

 

한 번은 시간, 장소(64괘)를 놓고 일기점(일기예보)을 쳤는데 어느 날 어느 시에 비가 오고 어느 때 비가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결혼식 택일을 했는데 장마 때이니 결혼식이 가능한가를 물어서 뽑아보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비는 오지 않았고 결혼식을 치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