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는 듯 계획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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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교수 중어중문학과/논설위원

오랜만에 그도 교수가 된 대학친구를 만났다. 학생시절 그 친구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니곤 하여 ‘백구두’라고 불렸다. 지금이야 근엄하신 교수님이시니 사람들 앞에서는 점잖은 척하고 아는 척하겠지만 우리는 안다. 그의 어릴 적 모습을….

사실 나도 별명이 있어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야! 싼뻬이!”라고 부른다. ‘(술)세 잔’이라는 ‘三杯’의 중국어 발음이다. 술을 세 잔밖에 마시지 못하여 붙여진 별명은 아니다.

수업시간에 옆 친구와 말을 하다가 갑자기 교수님께서 “싼뻬이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셨는데, 바로 앞 친구에게는 ‘코카콜라’를 물으신 뒤인지라, 책도 보지 않고 마실 것 중에서 ‘샴페인’이 ‘싼뻬이’와 가장 발음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가 얻은 별명이다.

다소 엉뚱했던 청년들이 이제는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지난 교수 생활을 이야기 한다.

“전임강사 때는 죽으라고 공부해서 가르치고, 조교수 때는 중요하니까 가르치고, 부교수가 되면 아는 것만 가르치고, 교수가 되면 생각나니까 가르친다.”고 하면서 웃는다.

아이가 대학 1학년 때, 제 아빠에게 “아빠! 나는 교수님이 제일 잘 가르칠 줄 알았는데, 강사 선생님이 제일 잘 가르치더라.”라고 한다.

돌이켜보니 나도 처음 부임했을 때는 참으로 열심히 했다. 물론 지금은 남들이 보기에 그저 한들거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는 “이제야 참맛을 안다.”고 생각한다.

아주 기초가 되는 것은 말하기 싫어하니 학부 학생들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며 못 가르친다고 생각하겠지만, 여태까지 없었거나 잘못 사용된 것만을 이야기 하곤 하니, 대학원생들이나 좀 아는 사람이 들으면 신기하게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도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거저지만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다행스럽게 나는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남의 일을 훔쳐보려고 기웃거리는 것도 싫어했으며, 그렇다고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따로 없었으니,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저 책을 보거나 걷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한 때는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계획한 바를 이루기 위해 죽으라고 공부한 적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궁금한 것이 있어 “왜?”라는 생각이 들면, 틈나는 대로 찾아보고 읽고 묻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저 시간을 보내고자 할 뿐 죽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죽겠다고 억지로 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어 무르익으면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얻어진다. 그저 앉아 계획 없는 듯 계획하여 책을 보고 또 보다보면 어느 날 나에게 주어진 것에 스스로 탄복할 수도 있다.

물론 많고 많은 세월을 교재랍시고 술 마시고 골프 치면서 몰려다니고 부동산에 열을 올리는 자들에게도, 남을 속이는 탁월한 능력이 주어져, 군림하는 자리를 얻었겠지만….

억지로 하려한다고 되는 것은 없다.

글 쓰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현학적으로 쓰고자 발버둥 친다. 그래서 표절한다. 아는 척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렵지도 않은 것을 어렵게 쓰는 것이 많이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정작 아는 사람은 어려운 것을 누구나 알기 쉽게 쓴다. 그것은 하려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그저 하던 대로 하다보면 어느 날 그런 날이 오기도 한다.

계획한 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죽으라고 하지 말라! 그저 정직하게 그리고 또 언제나 정직하게 살다보면 남에게도 떳떳하고 내 자신에게도 떳떳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나쁜 자는 나쁜 대로 산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

젊은이여!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라! 꾸미지 않고 계획 없는 듯 계획하며, 네 일에 충실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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