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풍경
졸업식 풍경
  • 제주신보
  • 승인 2018.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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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前 백록초등학교장/동화작가

졸업식을 떠올리면 형설지공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초·중·고를 막론하고 졸업식에서 교장선생님의 훈화에는 빠지지 않은 말이었다. 개똥벌레와 눈(雪)으로 이룬 공 즉 개똥벌레의 불빛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 이룩한 성공이란 뜻으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부지런히 학문을 닦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차윤이 가난하여 명주 주머니에 수십 마리의 개똥벌레를 넣어 책을 읽었다는 말과 손강은 가난하여 눈빛에 비추어 책을 읽었다는 말에서 생겨난 말이다.

얼마 전 우연히 NHK에서 일본 초등학교 졸업식을 보았는데 과거 우리나라 졸업식 장면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졸업식장의 모습도, 학생들이 상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단 앞으로 걸어가 상을 받고나서의 행동, 인사, 그리고 자리에 돌아오는 모습까지 하나도 다른 게 없었다. 일제의 교육제도를 물려받은 한국학교가 2000년대까지 일본학교의 졸업식을 그대로 따라했구나 하는 생각과 한 번 정해진 것은 쉽게 바꾸지 않은 일본이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여름 영어교육도시 KIS학교 졸업식에 초대를 받았다. 국제학교의 졸업식은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호기심을 품고 간 졸업식은 여간 색다른 게 아니었다. 넓은 무대 위에 선생님들이 앉아 있었다. 졸업생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가르친 선생님들의 날인 듯했다. 국민의례도 없이 유모어를 섞은 사회자의 멘트로 여러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축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학생회장의 학창시절의 추억담, 영상 축하메시지, 후배들이 창작하여 부르는 졸업식 축하노래,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축사가 2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국제학교의 졸업식을 보면서 만일 우리 학교 졸업식에서 선생님들의 축사가 길게 이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초·중·고등학교마다 졸업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12학년에 졸업식을 하는 것이니 고등학교의 졸업식이라면 수용할 수 있겠지만 졸업생들이 귀담아 들을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 저렇게 많으냐고 불편해할 것이라는 느낌이 우선이었다.

졸업식날 삼나무 판자의 벽을 발로 차서 망가뜨리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학교 기물을 부수거나, 밀가루를 뿌리고, 교복을 찢고, 바다에 뛰어드는 해프닝이 사회문제로 매스컴을 오르내리던 옛날의 졸업식 날은 교사들에겐 초비상이 날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졸업식에서는 대표학생만 연단에 올라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 모두 연단에 올라 상을 받는다. 또한 축제의 날이 되어 아이돌 가수를 흉내내는 음악회가 열리고, 합창이나 오케스트라 등의 수준 높은 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 제주교육박물관에 전시된 졸업장을 보면 일제강점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졸업장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졸업식은 추억을 남기고 초·중·고를 졸업하는 날이다. 또한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쉬운 날이기도 하다.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과거에는 슬픈 날이어서 우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눈물을 보이는 학생은 없다. 졸업식이 끝나면 꽃다발과 외식,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 즐거운 날로 변해 버렸다.

형식이야 어떻든 졸업식은 학생들이 그동안 공부하느라 애쓴 걸 위로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정든 학교와 선생님과 친구들과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하며 학교를 떠나는 날이니 인생에 있어서 매우 뜻이 깊은 날이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졸업생들이 미래를 위해 다짐이나 결심을 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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