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火)의 두 얼굴
불(火)의 두 얼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경업 논설위원
불(火)은 빛과 열을 내는 에너지다. 사전적으론 물질이 산소와 화합해 높은 온도로 빛과 열을 내면서 타는 것을 가리킨다. 불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했다. 불이 있었기에 따뜻함을 얻어 추위를 물리쳤고, 요리를 하며 익힌 음식을 먹게 됐다. 농기구와 기계도 제작해 자연의 한계를 극복했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존재로 지구상에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불의 발견과 이용에 있다. 불을 가진 인간은 수많은 종(種)을 제압하고 문명을 개척해 만물의 영장이 됐다. 그런 점에서 불은 자연이 허락한 최고의 선물이다. 이제 불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불은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어둠에서 인류를 구한 것도 불이지만 때론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생명까지 앗아가는 것도 불이다. ‘불은 잘 다루면 충실한 하인이고, 잘못 다루면 포악한 주인이다’란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불에 의해 발생하는 화재는 무서운 재앙이다. 인류가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이룩한 문명을 한순간에 재로 만들 수 있어서다. 오죽하면 화재를 마귀에 비유해 화마라는 말을 썼을까. 그냥 받아들이기엔 비참했기에 그렇게 빗댄 듯싶다. ‘시뻘건 화마가 건물을 집어삼켰다’는 표현이 그리 낯설지 않다.

불 화(火)자는 화염이 위로 치솟아 피어 오르는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다. 마귀 마(魔)자는 귀신 귀(鬼)와 음(音)을 나타내는 삼 마(麻)가 합해진 글자다. 따라서 화마(火魔)는 ‘불의 마귀’란 뜻이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심해 마치 악마와 같다는 의미다. 불은 정말 악마처럼 순식간에 눈앞의 모든 것을 태워 없앤다.

▲화마는 그 이름만으로도 탄식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한데 그 화마가 우리에게 심심찮게 찾아오고 있다. 지난 26일만 하더라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에 붉은 화마가 덮쳤다. 이로 안해 39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29명이 숨진 제천 화재가 터진 지 불과 한 달여 만이어서 충격을 더한다.

화재 신고가 접수된 뒤 3분 만에 소방대가 도착해 인명구조에 나섰음에도 엄청난 참화를 불러온 거다. 실로 믿기 어렵다. 불이 나면 자력 대피가 쉽지 않은 이른바 ‘피난약자’가 모인 병원인 탓이 크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 상당수가 참변을 당한 게 이를 증명한다.

대부분 “살려 달라”고 외마디 소리를 낼 뿐 병상에 누운 채 질식사했다고 한다. 당시 참상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생명을 구하는 병원이 생지옥이 됐기 때문이다.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