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중한 자산 ‘수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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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지난 11일은 서울 출장이 계획된 날이었다. 폭설이 예보되었지만 중요한 업무였기에 강행하기로 하였다. 새벽길이라 밤사이 내린 눈이 발목을 잡을까 염려하였으나 다행히 제설작업이 잘되어 있어 순탄히 공항에 도착하였다. 항공기 또한 정시에 탑승을 개시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출장길에 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하였다. 잠시 지연이라는 안내 방송은 항공기 내에서 대기한 지 2시간 30분이 지난 후에 결항을 알렸고, 우리는 출장을 포기해야 했다.

중요한 출장이라 마음은 불편하였으나 하늘의 일을 어찌하겠는가. 회사로 복귀하여 업무 중 틈틈이 공항 상황을 살펴보며 안타까워하였을 뿐이다. 하늘길은 온종일 지연과 결항을 반복하였고 공항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승객들도 많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손 놓고 있던 나와 달리, 교회 청년 몇몇이 과자와 온수가 든 보온병을 준비하고 공항을 찾았다 한다. 모든 이들에게 전하지는 못했지만, 유아를 동반한 분들께 보온병을 전하자 밝은 표정으로 받았다며 그날 밤 소식을 전해 왔다.

우리 집에도 보온병이 여러 개 있었는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어른보다 나은 청년들에게 다음에는 같이 가자는 말로 부끄러움을 덮었다. 청년들은 공공기관의 지원 물품들은 있었지만, 작년과 같은 개인 자원봉사 손길은 보이지 않았다며 뜻밖의 부재(不在)에 놀랐다고 했다.

며칠 후 ‘취업 도움 안돼.’ 찬밥 신세 된 봉사 활동이라는 본지의 기사를 대하며 11일 밤 공항에 자원봉사자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업들이 기존에는 신입 공채 시 봉사 활동을 기록하게 하였으나 최근에는 그 항목이 삭제되면서 가산점이 없게 되자 청년들이 봉사 활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제주에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눌음 정신이 있다. 척박한 이 땅에서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우리 조상들이 빚어낸 숭고한 나눔의 정신 수눌음. 기독교인인 내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곧 수눌음의 실천이다.

우리의 수눌음은 품앗이와는 다르다. 홀로된 과부의 밭도 동네 장정들이 갈아 주어 혼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되받을 수 없다 하더라도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네 일과 내 일을 구분 없이 함께 해나가는 것이 제주의 수눌음이다.

제주의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인구가 팽창하며 수눌음 정신이 소멸하여 가고 있다. 하지만 수눌음의 유전자가 제주인에게는 여전히 내재하여 있다고 생각한다.

수눌음의 불씨를 다시 살려 키워내야 한다. 우리들의 미래인 청년들이 자원봉사 현장을 기쁨으로 열심히 찾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그 정신의 소중함을 아는 부모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며, 사회는 자원봉사 할 수 있는 환경과 그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기업에 있어서 직원은 회사의 근간이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직원의 가치관은 기업의 문화를 이뤄 가고 이는 기업의 성패를 가름하게 된다. 그러므로 직원 채용에 있어 타인과 더불어 책임지고 살아가는 자원봉사 경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항공기 결항이 하루에 그쳐 그 심각성이 작년보다 덜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항공기를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승객들의 불편에 더하고 덜함이 있었겠는가? 관광객의 불편이 나의 불편이고, 제주로 이주해 온 타지인들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여 함께 나눌 수 있는 수눌음 정신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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