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대정읍의 향토사학자 양신하 선생이 명당지 아홉동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설화(tale)는 누군가에 의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말한다.


설화는 사전적인 정의로는 ‘어느 민족이나 공동체에 예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혹은 ‘실제 있었던 일이나 만들어낸 내용을 재미있게 꾸며서 하는 이야기’를 말한다.


설화는 다시 장르로 구분되는데 신화, 전설, 민담(民譚)이 그것이다.


신화(myth)는 신의 이야기, 즉 신들의 인간적 삶을 그린 이야기인 것이고, 전설(legend)은 과거에서 현재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이며, 민담(民譚, folktale)은 예로부터 민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 일명 민간 설화라고도 한다.


이렇듯 설화는 근본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신화를 제외한 전설과 민담은 서로 유사한 측면을 갖는다.


또한 설화의 큰 구조가 입으로든 문헌으로든 전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신, 영웅, 역사, 조상, 설촌, 풍수, 생활, 사건 등 매우 다양한 내용의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그 내용이 주는 의미는 교훈, 흥미, 유래, 익살, 풍자 등 삶의 전반적 요소에 걸쳐있다.


무덤 설화는 민담의 한 요소로 묘자리에 관한 개인과 집안의 길흉화복을 다룬 이야기로, 역사적 과정에서 집안을 일으키고 개인의 영달을 꿈꾸었던 조상들이 얼마나 음택풍수를 중요시 여겼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명당에 묻어 집안이 잘 된 가문


명당에 관한 이야기에는 비둘기가 많이 등장한다. 특히 파혈된 명당에서 비둘기가 날아가 앉은 자리가 처음 자리보다는 못하지만 차선의 명당이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 알뜨르 동반월에 있는 통정대부 강승익 무덤. 유명한 지관이기도 했다고 한다.

파혈터란, 원래 유명한 지관이 처음 지정한 자리인데 그 혈처를 다룰 때 누군가 그곳을 잘못 건드려 명당의 기운이 사라져 버린 곳을 말하는데 그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비둘기로 관념 된다. 대정의 향토사학자 양신하(梁信河, 1939년생) 선생이 기억하는 무덤 풍수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 제주의 사회적 의식을 잘 보여준다.


양신하 선생은 대정읍 상모리 파혈터(알뜨르  비행장 동쪽 격납고 옆)는 동네 사람이면 다 아는 유명한 명혈지로 아홉 동산이라고도 하고 놀래왓이라고도 하는 곳에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러했다.


양천 허씨(陽川 許氏) 허흥(許洪, 입도 12世)이 소(蘇)목사(제주목사)가 송악산 산세를 살피러 온다고 들어서 미리 세 커리 길목에 엎드려 기다리다 송악산에서 내려오는 소목사에게 “저희 아버님은 2대 독자인데 저는 3대 독자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체백을 모시고자 하오니 묘터를 한번 봐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부탁하니, 소목사가 말에서 내려 돌멩이 하나를 주워 던졌다.


“닿은 곳이 혈터이니 거기에 무덤을 써라. 땅을 파낼 때 기석(奇石)이 나오더라도 그것을 절대 파내지 말고 그냥 거기에 묻으라”라고 했다.


당시 상주인 허홍의 사위가 군위 오씨(대정골)인데 하관할 때 마지막 잔을 드리려고 하니까 마침 튀어나온 돌이 있어서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돌을 빼버렸다.


돌을 뺀 순간 비둘기 두 마리가 땅속에서 나와서 날아갔다.

 

두 마리 비둘기가 놀래서 날아간 곳이 서반월과 동반월인데 가까이 날아간 곳이 동반월, 좀 멀리 날아간 곳이 서반월이다.


무덤의 방향에 따라 서향이면 서반월, 동향이면 동반월로 구분했다.


그  입구 쪽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허승한(양천 허씨 입도 10세)의 작은 부인의 4째 아들인인 막내아들 허전(許巓, 1735년 33세 卒, 지관 강승익의 사위)의 무덤이다.


그분이 9살 때 결혼을 했다. 부인이 그때 14살 정도 됐는데 옛날에는 여자가 더 나이가 많았다.


부인이 친정에 갈 때 신랑을 업어서 다니다가 힘드니까 마차에 태워서 갔다고 하는데 허전은 33세 젊은 나이에 돌아갔다.


그 무덤도 서반월에 있다. 서반월은 유명한 지관 강승익이 자기가 들어갈 자리를 봐 둔 곳이었다.

 

그러나 허씨 사위가 먼저 죽자 딸이 유명한 지관인 아버지에게 허서방 묻을 자리를 점지해 달라고 하니 강지관은 서반월에 묻도록 했다.


서반월은 누워서 서쪽의 초생달을 보지만 언젠가는 초생달이 만월이 되니까 그 집안이 그와 마찬가지로 아주 흥한다고 했는데, 자손이 잘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양천 허씨 후손들이 잘 되었다.


강승익(姜承益, 입도 12세) 지관의 무덤은 동반월에 있는데 강씨 집안도 유명한 사람들이 났다.


그 집안에서 제주 부시장하고 부지사도 했는데, 결국 후손이 잘 된 곳은 파혈터 때문이다.


그 혈기를 알고 비둘기가 앉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둘기가 앉은 자리가 명당자리가 됐다.


양신하 선생은 명당의 전해오는 지명을 “아홉 동산, 혹은 놀래왓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비석에는 놀래왓, 그것의 한자 표기로 歌田이라고도 쓰여 있다.


그가 들은 놀래왓의 유래는 “옛날 조선시대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로, 밭에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쉐(소)가 앞으로 한 걸음도 못 나가니까 쉐 때리는 가린석으로 소를 세게 때리는 바람에 잠대가 부지직하고 꺾어지면서 튀어나온 것이 보섭에 감겨져 있는 큰 구렁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소도 놀라서 도망가고, 농부도 넋이 나갔다. 그 구렁이가 용으로 승천한, 그런 기가 쌓인 곳이라고 하여 놀래왓이라고 했다.


또 아홉동산이라고도 한 것도 그 지형이 뱀처럼 구불구불해서 형국이 비룡상천지(飛龍上天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놀래왓’이라고 하는 곳에서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노래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리 신빙성이 높지 않다.


놀래왓 주변에 세운 1970년대 비석에는 놀래왓과 가전(歌田) 두 가지로 표기돼 있다.


놀래왓을 한자로, 노래 가(歌) 밭 전(田)으로 표기한 때문이다. 아마도 놀래왓은 “쉐와 사람 모두가 놀랜 밭”이 잘못 전해진 것일 수 있다. 

 

 

   
▲ 제주의 쉐(소). 소를 제주방언으로 쉐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쉐를 기르는 번쉐를 했다.

▲쉐 잡았던 순철이 무덤


양신하 선생은 쉐와 연관된 이야기를 해준다.


옛날 대정읍 영락리에 마을 소사가 쉐 잡고 칼 잡는 일을 하는데 그런 사람을 피쟁이(백정)라고 한다.


성은 모르고 이름이 순철이라는 사람이 쉐 잡는 피쟁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죽으니까 연고도 없는 사람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무덤을 방묘 같이 작게 만들어 줬는데, 산담도 없는 무덤이었다.


옛날에는 산담은 잘 사는 집에서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무덤에서 ‘칼 가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무척 꺼림칙 하게 생각했다.


예전에 내가 어릴 적에는 동네 아이들과 같이 순철이 무덤에 귀를 대고 들어보려고 했지만 칼 가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쉐를 길렀다.


이것을 번쉐하고 하는데 번쉐는 쉐 있는 집에서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며 쉐를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순철의 무덤을 지나갈 때마다 쉐들이 그 무덤을 파 버리는 것이었다.


비록 말 모른 동물이지만 쉐들이 더 잘아서 순철이 무덤에 그런다고 했다.


지금은 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순철이 무덤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