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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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자유기고가

내 땅 까마귀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철부지 때의 이야기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내 유년의 숙제였다. 어른들이 고향과 피붙이에 대한 연민을 까마귀를 매개로 에두른 은유적 수사가 아니었을까.

내 유년의 까마귀는 초가지붕을 맴돌다 어린 병아리를 채 가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미 닭 품에서 잠시 이탈한 병아리를 잽싸게 낚아채고, 날아가는 흉포한 새를 당해 낼 재주가 없었다. 그 시절 우리 집 지붕과 마당을 서성이는 까마귀는 너덧 마리 남짓 되었을 것이다. 몸집이 크고 까만 털에 윤기가 났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면 하늘을 새카맣게 무리지어 선회하는 떼 까마귀도 있었다. 바람까마귀라 했다. 까마귀는 텃새와 철새로 나뉜다. 집 주위를 배회하는 까마귀는 텃새고, 떼 지어 나는 까마귀는 철새다. 텃새 까마귀는 몸집이 크고, 바람까마귀는 몸집이 날렵한 게 특징이다.

텃새 까마귀는 우리 제삿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지붕과 부엌문 앞을 기웃거렸다. 어머님은 까마귀가 제삿날을 안다는 말을 믿는 것 같았다. 제사를 지낸 이튿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까마귀 두어 마리가 부엌 앞을 주억거렸다. 바람 불고 날씨가 거칠어 질 기미가 보이면, 까마귀들은 집 앞 늙은 멀 구슬나뭇가지에 앉아 흉측스럽게 울었다. 어머님은 까마귀 우는 소릴 매우 터부시했다.

그러던 까마귀가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추어 갔다. 수목원에서도 근처 오름에서도, 까마귀 보기가 예전 같지 않으니 말이다. 그 연유가 무엇인지를 한동안 고민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알아낸 까닭은 까치 때문이었다.

본디 까치는 이 고장 텃새가 아니다. 굳이 언제 어떻게 까치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내 땅 까마귀의 터전을 빼앗고 주인행세를 하는 게 영 못마땅하다. 당장 내쫓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볕 좋은 날 별도봉 산책로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싸우는 걸 목격했다. 까마귀가 생쥐 한 마리를 낚아채자, 금세 까치 서너 마리가 달려들었다. 까치들은 까마귀가 쪼고 있는 먹이를 뺏으려 집중공격을 해댔다. 중과부적임을 감지한 까마귀가 먹이를 놔두고 달아났다.

우리 병아리를 채가던 날렵함은 간데없고 허둥지둥 도망치는 까마귀의 몰골이라니, 까치무리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까마귀와 까치가 치열하게 싸울 때, 곁에 까마귀 두세 마리가 있었으나 심드렁히 못 본 체했다. 이 절박한 순간에 동료를 돕지 않는 까마귀의 심통이 부아를 자극했다.

까마귀는 원래 리더 개념이 없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철저한 개인주의다. 애초에 까마귀는 매혹적인 새는 아니다. 속담에 까마귀가 까치집을 뺏는다는 말은 역설적인 비유로 읽힌다.

내 땅 까마귀가 까치에게 쫓겨나는 현실은 씁쓸한 대목이다. 터전을 빼앗긴 까마귀의 궁색한 생존이 눈물겹다.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려고 허겁지겁 달려드는 모양새는 차마 보기 민망하다. 등산객들이 먹을거릴 꺼내놓기 시작하면 까마귀들이 득달같이 모여든다.

어리목, 윗세오름, 진달래밭과 백록담이 텃새 까마귀의 터전으로 변한 지 꽤 된다. 예전엔 백록담까지는 까마귀의 영역이 아니었는데, 등산객 따라 생존영역을 넓혀가는 걸 누가 막으랴. 머지않아 등산객들이 먹을거릴 던져주는 곳이 내 땅 까마귀의 주된 서식지가 될 게 눈에 선하다.

하늬바람이 차다. 바람까마귀도 제 땅 찾아 떠나고 내 땅 까마귀도 까치에게 쫓겨난 황량한 들녘이다. 이제 내 땅 까마귀는 없다. 먼 바람타고 들려오는 걸신(乞神)들린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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