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눈길 밟고 온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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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일어나서 가야 한다. 가기만 하면 반드시 이기는 거야. 가지 않으면 지는 거다.”

제프리J 폭스가 쓴 〈왜 부자들은 모두 신문배달을 했을까〉라는 책 속에서 주인공 13세 소년 ‘레인’이 아버지의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대목이다.

책은 레인이 신문배달을 시작하면서 ‘올해의 루키’로 선정되고 진정한 사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쉽고 흥미롭게 담아냈다. 춥고 어두운 골목에서 배운 진짜 비즈니스를 표방한 것.

별난 발상이다. ‘비즈니스 성공 법칙을 한마디로 말하면?’이란 질문에 “이른 새벽, 추운 골목”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저는 신문배달을 통해 비즈니스를 배웠습니다. 신문배달은 사업을 경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문배달원은 세일즈맨이며 마케터이며 기업가입니다. 모든 직업, 모든 일에는 경영의 비법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이어지는 말이 핵심이다. “신문 구독자, 고객들에게 중요한 건 하나입니다. 신문이 제때에 온전하게 배달되느냐 하는 겁니다.”

책에는 ‘신문배달 십계명’이 실려 있다.

▲배달은 빼먹지 말라. ▲늦게 배달하지 말라. ▲아프지 말라. ▲휴가를 가지 말라. ▲캠프도 가지 말라. ▲젖고 찢어진 신문을 배달하지 말라. ▲피곤해 하지 말라. ▲길을 잃어버리지 말라. ▲변명하지 말라. ▲자전거를 고장 내지 말라.

하나에서 열까지, 명령 종결형 ‘~말라’다. 신문배달을 제대로 하려면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휴가도 반납해야 할 판이다. 피곤해 할 권리(?)도 없으며, 신속 배달을 위해 타고 다니는 자전거도 고장 내지 말아야 한단다.

비가 크지 않아도 신문은 노상 흰 비닐에 씌워 있다. 신문이 비닐 옷을 입고 있으면 ‘비’를 예보한 날이다. 설령 비가 안 와도 올 것에 대비하는 배달원의 바지런한 손길이 매번 느껴진다.

지난 1월 24일, 꽁꽁 얼어붙은 섬이 밤새 내려 덮인 눈으로 새하얬다. 새벽 세 시에 창을 여니, 눈 내리는 아름다운 설야.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밖에서 스미는 한기에 이불 속을 파고들어 또 잠에 빠져 든 것이다.

여섯 시, 눈 뜨자마자 퍼뜩 자리를 박차게 한 것은 새벽녘, 그 아름답던 설야의 잔상이었다. 동창을 열고 밖을 보았더니, 눈 수북이 쌓인 마당으로 함박눈이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제주新보가 왔을까?’ 행여나 해 문간으로 눈을 보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신문이 대문 틈에 끼워 있지 않은가. 아니, 이 눈사태에 신문을 배달하다니. 미끄러질라, 골판지를 현관 앞에 깔아 가며 마당을 가로질러 걸음걸음 다가갔다.

2018년 1월 24일자 제주新보가 강풍과 눈발 속에 왔다. 대문을 열고 길 앞을 내다봤지만 사람이 다녀 간 자취라곤 없다. ‘아, 배달원이 왔다 간 차 바큇자국 위로 줄곧 눈이 내린 게로구나.’

숫눈길을 밟고 신문은 왔고, 그 흔적을 눈이 지웠다. 순간, 구독료를 받으러 와 웃음 짓던 덩치 큰 배달원 얼굴이 떠올랐다. 신문이 한창 어려움을 겪을 때, 궁금해 하는 내게 “제주新보, 여전합니다!”면서 활짝 웃던 그. “그래요? 정의로운 신문이니까.”서로 쳐다보며 웃었었지.

배달원이 누구 한 사람도 다니지 않은 숫눈길을 밟고 왔다 갔지 않은가. 그 친구가 집에 올 때면 주고받는 웃음이 늘 싱그럽다. 제주新보를 받으면서 구독료를 미뤘던 적이 없다.

이번 구독료를 받으러 오면, 지난번 ‘숫눈길 배달’ 인사부터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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