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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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시인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다.
어린애 같은 감성이 되살아나 잠시 들뜨다가도 금새 우울해지는 겨울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전곡을 테너 리안 킴과 허주원의 피아노 반주로 들을 기회를 잡은 건 행운이었다. 송당리 지인의 집엔 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음악 감상 동호인 20여 명이 기대에 찬 눈빛이 별처럼 빛났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사랑을 잃은 사람의 절망적 슬픔과 침울하고 어두운 마음은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는 아픔이었으리라.

 

가난한 작곡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굵직한 테너의 호소력 있는 절규와 피아노의 절묘한 조화로 분위기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제1곡 ‘안녕히 주무세요’로 시작하여 제 5곡 ‘보리수’가 나오자 모처럼 아는 가곡이어서 매우 반가웠다. 제24곡 ‘거리의 악사’로 마칠 때까지 무려 한시간 반, 감동의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겨울 나그네인지 모른다. 인생이란 길이 어찌 화창한 봄날이기만 하랴. 슬픔과 고난이 계속 이어지는 우리는 오늘도 음침한 겨울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친한 친구와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108배를 바쳤다. 나는 불자가 아니어서 불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의식이나 절차에 서툴지만 친구 따라 108배를 올리는 동안 추운 겨울 눈 속에서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백팔 대참회문’을 하나하나 읽으며 절하는 동안 나는 불교의 심오한 참회와 성찰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모든 종교의 기복신앙은 인간이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함에서 온 것이겠지만 불교의 사상은 달랐다. 참회문 1-60까지는 ‘참회’ 61-80까지는 ‘감사’ 81-108까지는 ‘발원’을 담은 기도였다.

 

소원을 바라기 전에 진실된 참회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참회문 4번이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합니다’.  74번은 ‘바람소리의 평화로움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였다.  기도문을 더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내가 지은 죄를 누가 용서한단 말인가 진실된 참회와 고행, 그리고 공덕을 쌓음으로써 지은 업보를 조금씩 씻어가는 수행이 아름답다.


적멸보궁에서 돌계단을 내려와 사자암을 되돌아보며 상원사로 내려오는 동안 나는 절로 ‘겨울 나그네’였다. 멀리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또렷이 가슴에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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