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는 바람을 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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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논설위원
‘질풍경초(疾風勁草)’ 시골 중학교에서 까까머리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스승님이 제자가 예전에 편집국장을 맡자 전화상으로 전해준 메시지다. 거친 바람이 가녀린 풀을 억세고 강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신문 제호 변경(제주新보) 등 제자의 상황을 초야에 있으면서도 익히 알고 있는지 좌절하지 말고 헤쳐나가라는 격려를 담았다. 나중에 확인한 것이지만,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온다. 후에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된 유수(劉秀)가 낙양(洛陽) 전투에서 크게 패했을 때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 왕패(王覇)에게 한 말이다.

유수는 “영천에서 나를 따랐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그대만이 남았소. 계속 노력해 봅시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을 알 수 있는 것이오.” 뒷날 유수가 후한의 광무제가 되자 그를 중용했다. 이 사자성어를 2년 2개월 동안 자주 읊조렸다. 그리고 집안 거실에 억새와 오름이 잘 어우러진 사진 하나를 구해 걸었다.

▲‘거친 바람이 한나절을 넘기고, 소나기가 온종일 내리던가(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사람은 겪어봐야 알고, 강은 건너봐야 안다고 했던가.” 조직이 잠깐 요동치자 몇몇은 자리를 떴다. 그래도 남은 이들이 많았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트고(良禽擇木), 매화는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들이 만든 신문은 지국의 손길을 거쳐 ‘안경너머 세상’을 연재하는 김길웅 칼럼니스트의 글처럼 ‘숫눈길’을 밟고 독자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인사를 했다. “정의로운 신문입니다.” 김찬흡 선생은 자신의 평생 역작인 ‘제주인물 대하실록’을 기꺼이 제주新보에 건네줬다. 탐라 시대부터 현대까지 제주와 관련된 인물 3000여 명을 기록한 ‘만인보’다. 김유정 작가는 돌 문화의 백미인 ‘산담’을 기록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오승철 시인과 김해곤 화가 등은 시와 노래와 춤, 그림, 사진 등 예술 장르 간의 벽을 뛰어넘는 ‘난장’을 펼쳤다.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올해도 ‘난장Ⅱ’로 계속된다. 제주시조시인협회는 시조의 깊은 뿌리만큼이나 흔들림 없이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다. 전국 시ㆍ도의 유력지 모임인 한국지방신문협회는 2년여간의 저울질을 통해 본지를 선택했다. 지금은 9개사가 ‘분권 기획물’을 통해 지역의 미래 발전을 논하고 있다.

▲이 모든 덕에 제주新보는 억새 같은 ‘경초’로 변모했다. 독자와 도민들의 격려와 질책을 어찌 빼놓을 수 있겠는가. 언제나 기댈 언덕이다. 촌놈이라서 안다. 엄동설한에 단련된 풀은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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