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전은 흥부가 썼다"…발상의 전환 돋보이는 영화 '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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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스물네 번째 임금 헌종(1827∼1849)은 여덟 살에 즉위했다. 수렴청정 체제에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가문이 권력다툼을 벌였다. 세도정치에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졌다.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보태 200년 전에도 올바른 세상을 향한 민초들의 힘이 발휘됐음을 상기시키려는 영화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헌종 14년에서 30여 년 앞선 1811년 이미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고 천주교가 수입되는 등 민심이 한데 모일 조건은 충분했다. 영화는 홍경래의 난에서 비롯된 인물들의 기구한 사연에서 고전소설 '흥부전'이 만들어졌다는 가정으로 출발한다.'


흥부전의 작자가 흥부 자신이며 소설 속 이야기는 다른 형제의 사연이라는 상상은 기발하다. 흥부(정우 분)는 어린 시절 홍경래의 난을 겪으면서 형 놀부(진구)와 생이별을 했다. 소설 속 흥부와 놀부는 사실 조혁(김주혁)·조항리(정진영) 형제의 사연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동생 조혁은 백성과 민란군의 정신적 지주이며, 형 조항리는 유력한 세도정치가다. 시대상을 압축한 조씨 형제의 극단적 대립관계가 소설 흥부전에 정치적 잠재력을 불어넣는다.


흥부는 원래 엽색 소설을 즐겨 쓰는 저잣거리 인기작가다. 야한 소설을 쓰는 이유는 세상에 이름을 알려 잃어버린 형 놀부를 찾기 위해서다. 수소문 끝에 형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조혁을 만나지만, 형의 거취를 바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힘든 백성들을 돌보는 조혁으로서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민란군의 수장 놀부를 한낱 엽색소설 작가에게 넘길 수 없다. 조혁은 자신과 형 조항리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라고 제안한다.


흥부전은 이렇게 탄생하고 흥부는 결국 놀부와 만난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흥부는 김응집(김원해)을 역모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조항리의 꾐에 빠져 예언서 '정감록'의 외전을 썼다가 패권다툼의 한복판에 휘말린다. 조항리 역시 못된 놀부의 실제 모델인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져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흥부의 작품 두 편이 양대 권력자를 뒤흔든 셈이다.'


흥부전을 촉매로 모인 민초들의 힘은 결국 궁중정치의 향배를 가른다. 이것이 흥부전과 민중의 정치적 잠재력이라는 게 영화가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그러나 영화 속 봉기의 결과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촛불 아닌 횃불을 들고 광화문을 향해 전진하는 민초들, 이들을 진압하려다가 자신들도 역시 백성임을 자각하는 궁궐 수비대의 모습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등장한다.


영화는 오로지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향해 내달린다. 그 과정에서 사건들은 덜컹거리고, 캐릭터는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놀부·흥부 형제에 대해서는 홍경래의 난 때 헤어졌다는 점 말고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조혁 역시 위인전에서 튀어나온 듯 현실과 유리된 캐릭터다. 권력욕에 눈이 멀었고 캐릭터 자체가 일종의 풍자라고 해도, 임금 앞에서 칼춤을 추는 조항리는 기이하게 보인다.


김주혁과 정진영은 물론 사극에 처음 도전한 정우까지 배우들 연기는 흠잡을 데 없다. 천우희는 남장을 한 채 흥부의 조수 역으로 특별출연해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세 차례 마당극과 궁중연희가 볼거리다. 밥주걱을 휘두르는 형수에게 다른 편 뺨을 내밀고, 꿈과 희망을 놓지 않도록 독려하는 고(故) 김주혁은 팬들의 눈시울을 붉힐 만한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준다. 14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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