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진 그리고 몸에 밴 안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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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일본 치바대학교 준교수
지난해 12월 한국에서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피해가 있었고 수능시험이 일주일이나 연기됐다. 한국 대입시험은 거의 국가적으로 치러지는 일이다. 갑자기 생긴 자연재해와 시험연기는 많은 수험생과 관계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진이 거의 일상화된 일본에서는 시험이 치러지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지진에 대비해 수험생들은 물론 시험 감독관까지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이나 대피 지침을 숙지하도록 돼있다. 특히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모든 시험장의 지진 관련 행동지침은 더욱 강화됐다. 영어 듣기 시험이 치러지는 시간에는 엘리베이터 이용도 금지돼 있다. 혹시라도 지진이 발생해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일본은 지진이 일상화돼 있어 규모가 큰 지진이 아닌 이상 크게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처음에는 다소 의아해했지만, 20년 넘게 일본 생활을 하며 그들의 생활 습관을 지켜보면 의문이 풀린다.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이나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일을 대비한 지진대피 교육과 훈련을 주기적으로 받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을 이미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만 해도 아파트 주민이 참가하는 방재(防災)위원회가 있다. 그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지진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긴급 연락망과 행동 매뉴얼을 만들어 상시 공유한다. 게다가 아파트 동 단위로 크고 작은 방재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그리고 지진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미리 책임자를 정해둔다. 물론 일본의 모든 아파트 단지가 다 그런 준비가 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진 대비를 위한 자치 위원회는 늘어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성인이 돼서도 계속해서 훈련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지진과 재난에 대한 매뉴얼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자신의 안전 의식도 점검하는 것이다. 단순히 형식적인 일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일본에서의 지진대비는 지역사회나 개인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재난 발생 시 가장 먼저 재난을 알리고 정보를 제공하는 공영 방송 또한 지진에 대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국영방송인 NHK는 2011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진발생 2분 후부터 TV와 라디오 모든 채널을 일제히 임시뉴스로 바꾸고 한 달 동안 총 571시간이 넘는 재난 관련 방송을 내보냈다.

그 후로도 재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재난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하기까지의 모습과 재난후 산적한 과제들을 점검하는 보도를 계속해서 내보냈다. 그리고 지난 대지진의 경험을 살려 지진과 쓰나미 경보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피난 보도지침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알기 쉽고 정확한 재난보도를 위해 화면표시도 개선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재난에 대비해 긴급보도에 임하는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공영방송의 부단한 노력을 자체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재난 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시청자들과 같이 고민하기도 한다.

재난을 부러워할 수는 없지만 재난을 대비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시간이 갈수록 부럽기도 하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다. 물론 필자의 부러움은 어디까지나 지진에 대한 대비책에 한정된 것이다. 원자력 재가동과 같은 2차 재난의 피해를 확대시키는 일본의 정책에는 의문이 많다.

재난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에 그에 대한 안전의식은 쉽게 잊혀진다. 대비책 또한 시간이 갈수록 느슨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한 해 크고 작은 지진을 경험한 한국.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들 말한다. 안전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한국도 이제 일본인들과 같은 일상화된 안전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기회에 새롭게 한국인만의 안전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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