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지갑을 소위 ‘유리지갑’이라고 부른다.

‘유리지갑’은 봉급 내역이 투명한 사람들의 돈지갑을 뜻하는 말로, 일반 봉급생활자들의 봉급이 훤히 보인다고 해서 ‘유리’에 비유한 것이다.

직장인들의 월급은 말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나고,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은 매월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여져 나간다. 이를 원천징수라고 한다.

평범한 봉급쟁이들이 세금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시기는 아마 매년 1월쯤인 듯싶다. 연말정산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연말정산을 하다보면 ‘유리지갑’이라는 현실이 더욱 깊숙이 와 닿는다. “내가 이렇게 세금을 많이 냈었나”하는 마음에 머리를 굴려보고 발품도 팔아보지만 세금을 돌려받을 뾰족한 방법도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말정산을 13월의 월급 또는 보너스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오히려 뱉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푼이 아쉬운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꼬박꼬박 나가는 세금으로 마음 한 구석에서 야속한 심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금 납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잠시 시선을 돌려보자. 국세청 홈페이지 정보공개 코너에는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이 공개돼 있다. 2억원 이상의 세금을 1년 이상 체납한 사람들이다.

제주에는 얼마나 될까. 워낙 좁은 지역사회다보니 꼼꼼히 확인하다보면 아는 사람의 이름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소를 기준으로 제주지역으로 공개된 고액·상습체납자는 개인은 335명, 법인은 72개소다.

개인 중에서 50억원 이상을 체납한 사람은 모두 10명이다. 최고 체납금액은 74억600만원에 달한다. 이어 69억36000만원, 69억2700만원, 69억500만원, 68억6900만원, 67억6500만원, 65억5800만원, 60억1800만원, 59억7300만원, 50억2600만원 등을 체납했다.

평범한 직장인들은 평생 한 번 구경하기도 힘든 돈이다. 그리고 유리지갑의 입장에서는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세금을 체납할 수밖에 없었고,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 고의적으로, 지능적으로 엄청난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국세행정개혁TF가 제시한 국세행정개혁권고안에도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효율적인 체납관리가 주문됐다.

국세행정개혁TF는 고액·상습 체납관리 강화를 위해 고액 체납자 명단 공개자료를 업종별로 시각화해 국민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체납자의 은닉재산 추적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실명법을 개정해 금융자산 조회범위를 체납자의 배우자와 친인척까지 확대해 은닉재산을 철저히 추적·징수하도록 권고했다.

또한 고액 체납자에 대한 여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여권법을 개정해 해외도피를 차단하도록 했다.

국세행정개혁TF는 “경제규모 확대, 장기 경제침체 등으로 전체 체납규모와 고액체납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므로 고의적·지능적 재산은닉 행위를 통해 체납처분을 회피하고 호화생활을 하는 자 등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안을 제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고액·상습 체납은 조세정의 실현 차원에서도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조세정의가 실현되길 바란다. 그게 나라다운 나라일 것이다.

그리고 유리지갑들은 조세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그렇지 않으면 유리지갑들만 봉이 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