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는 바람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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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전해 오는 얘기가 있다.

친구인 억새·달뿌리풀·갈대 셋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길을 떠났다. 긴 팔로 춤추며 가노라니 어느새 산마루. 바람이 세어 달뿌리풀과 갈대는 서 있기도 힘겨웠지만 억새는 견딜 만했다. 억새는 잎이 뿌리 쪽에 나 있다. “와, 시원하고 경치가 좋네. 사방이 탁 트여 한눈에 보이니 난 여기 살래.” 달뿌리풀과 갈대는 “우린 추워서 산 위는 싫어. 낮은 곳으로 갈 테야.” 억새와 헤어져 산 아래로 내려간 둘이 개울을 만났다. 때마침 둥둥 떠올라 물위에 비친 달에 반한 달뿌리풀이 말했다. “난 여기가 좋아. 여기서 달그림자를 보면서 살 거야.”하고 거기, 뿌리를 내렸다. 갈대가 개울가를 둘러보더니, 둘이 살기엔 좁다며 달뿌리풀과 작별하고 더 아래쪽으로 내리는데, 그만 바다가 막아서질 않는가. 더 갈 수 없게 되자 갈대는 강가에 자리 잡았다.

비탈은 자드락이고 가팔라 풀이 설 곳이 못된다. 그곳에 서려면 중심을 잃어선 안된다. 비탈은 사철 휘몰아치며 지나는 바람의 길목이다. 쉴 새 없이 흔들린다. 흔들려도 자신을 받쳐 줄 바지랑대가 없다. 까딱하다 쓰러지기 십상이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억새는 강하다. 제주 산야엔 억새가 너울 치며 은빛 물결로 춤을 춘다. 무덕무덕 뒤덮인 억새 숲 위로 햇살이 폭포수처럼 내린다.

억새 오름이라는 새별오름, 소곤소곤 말을 걸며 끝없이 걷고 싶게 유혹하는 산굼부리, 휘청대면서도 억새가 바람에 맞서 능선 따라 흐르는 따라비오름. 여기도 억새, 저기도 억새다. 한데 바람 부는 날이 더 장관인 이유가 있다. 매서운 바람 앞에 너울너울 춤을 추기 때문이다.

억새는 음습한 곳을 싫어한다. 햇빛 쏟아지는 들판에 군락을 이뤄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2m나 되는 훤칠한 키에 굵은 땅속줄기가 빽빽하게 뭉쳐난다. 그래서 바람 앞에 질기고 모질다.

지난 2월 6일자, 고동수 전 편집국장의 〈춘하추동〉 ‘억새는 바람을 피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그칠 줄 모르고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산비탈 가파른 자락에 허옇게 눈을 쓰고 있는 억새 숲이 출렁거렸다. 폭설과 한파에도 억새는 끄떡 않고 고난의 겨울을 날 것이란 믿음이 있어 웃었다.

고 전 국장이 내놓은 오피니언 타이틀 ‘사노라면’은 먼 어둠의 바다로 던지는 어부의 투망(投網)이다. 온갖 고기가 그물 안에 걸려들어 파닥거릴 것 같다. 필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소재의 탁 트인 시야. 언젠가 그 함의(含意)에 반했다 했더니, ‘안경 너머 세상’을 치켜 올리매 함께 웃었다. 그뿐인가. 문화면의 낯설어 풋풋한 편집과 풍성한 읽을거리로 신문이 인문정신의 부활을 예약했다.

제주新보로 새 이름을 달던 곡절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가슴 아리던 우리다. 신문이 세속에 맞섰던 정의로움을 제주도민들은 모두 안다.

신문이 일일신(日日新)하고 있다. 고난의 날들을 몸으로 겪어 왔지 않은가. 고 전 국장이 글의 도입에서 한 말이 쩌렁쩌렁 쇳소리로 되살아나며 귓전을 울린다. “거친 바람이 가녀린 풀을 억세고 강하게 만든다.”

제주新보는 해냈다. 버티고 막고 붙들고 추슬러, 이로(理路) 정연히 맞섰다. 억새는 비바람에 굽히지 않는 풀, ‘경초(勁草)’다. 어느덧 제주新보는 들판의 억새가 됐다.

혹한 속에 며칠째 폭설이 이어진다. 엄청나게 눈이 내린 여러 날 아침, ‘숫눈길을 밟고 온 제주新보’가 대문에 끼워져 있다. 시내에서 읍내까지 이 눈길을 어떻게 밟고 온 걸까. 푹푹 발을 묻으며 마당을 가로질러 신문을 갖고 왔다.

억새는 이 눈발에도 꿋꿋이 비탈에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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