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가 강화에서 진도를 거쳐 마지막 거점지를 제주로 삼은 가운데 이 지형을 선택한 이유는 조망권이 좋고 자연·지형적으로 가파르며 성을 쌓기에 재료가 매우 좋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총 동원해 성을 쌓았는데 토축의 축성 방식이 13세기 중반 강화도에서의 이뤄졌던 방식 그대로 재현돼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지난 10일 제주시 애월읍 소재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서 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이 이같이 말했다.
이 행사는 국립제주박물관과 (재)제주고고학연구소가 주최·주관한 항몽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으로 지난 9일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린 ‘동아시아와 삼별초’ 학술심포지엄과 연계됐다.
이날 역사학자, 소설가, 화가, 일반인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가운데 항몽유적 내성 발굴조사 현장과 항파두성 둘레길 탐방이 진행됐다.
이날 함께한 윤용혁 공주대학교 명예교수는 “1978년 항파두성 정비 당시 문화재 지정과 같은 기본적 작업이 전혀 수반되지 않은 채 이뤄졌다”면서 “7~8년전부터 제주고고학연구소가 토성의 성체와 성내 건물지에 대한 발굴작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 대부분이 단순히 항파두리항몽유적지가 김통정 장군이 성을 쌓고 여·몽 연합군과 대결했던 최후의 항쟁지라는 것을 넘어 삼별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되고 항파두성에서 발견된 유물에 대해서도 보다 깊이 있게 알게됐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참가자 박덕준씨(제주시 애월읍·53)는 “항파두성의 축조과정, 구조물과 건축양식을 자세하게 알게됐고 내성과 외성, 둘레길을 돌아보면서 역사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제주고고학연구소는 20개년 계획을 세워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내 발굴작업과 복원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